사랑해
2026.07.14
달칵, 하고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거실의 정적을 깨뜨렸다.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휴대폰으로 팬들의 반응이나 훑어보던 지한울의 시선이 소리가 난 쪽으로 무심하게 향했다. 어, 벌써 나가나. 그는 딱 그 정도의 생각을 하며 다시 액정 위로 눈을 돌렸다. 늘 그렇듯 가볍게 손을 흔들어주거나, 다녀와, 하고 말하는 것으로 배웅을 대신할 생각이었다. 그것이 두 사람 사이에 굳어진, 익숙하고 편안한 일상의 한 조각이었으니까. 언제부터였더라. 연서이는 집을 나설 때마다 꼭 그의 뺨에 입을 맞추거나, 혹은 멀리 떨어져 있을 경우엔 큰 소리로 사랑한다고 외치고는 했다. 처음에는 그게 낯간지럽고 어색해서, 그는 매번 ‘어어, 알아, 나도’ 하는 식으로 퉁명스럽게 답하곤 했다. 하지만 그 퉁명스러움 아래로 지독한 안도감이..
샴푸가 아니었어!
2026.07.10
지한울의 손이 멈추었다. 아니, 지한울의 세상 전체가 멈추었다. 욕조 안에서 나른하게 등을 기대고 있던 그의 몸이 순간적으로 경직되었고, 연서이의 손가락 사이에 들려 있는 분홍색 용기가 그의 시야 한가운데에서 또렷하게 초점을 맞추었다. 거기에 적힌 글씨. 'Hair Removal Foam.' 그의 뇌가 그 단어를 인식하는 데에 정확히 삼 초가 걸렸다. 첫 번째 초에 그는 연서이의 얼굴을 보았다. 두 번째 초에 그는 자신의 머리 위에 잔뜩 쌓여 있는 거품을 떠올렸다. 세 번째 초에, 그의 영혼이 육체를 이탈했다.지한울의 표정이 실시간으로 변화했다. 나른한 미소에서 의아함으로, 의아함에서 경악으로, 경악에서 공포로. 그의 잿빛 눈동자가 연서이의 손에 들린 용기와 자신의 머리 사이를 미친 듯이 오갔다. 욕조 ..
사랑해 해질녘
2026.07.04
그것은 완벽하게 계산된 고백이었다. 지한울의 사전에서 사랑은 충동적인 감정의 발화라기보다는, 정확한 타이밍에 맞춰 터뜨려야 하는 정교한 폭죽과도 같았다. 그는 지금 이 순간이 바로 그 최적의 타이밍이라고 판단했다. 늦은 오후의 햇살이 거실을 비스듬히 가로지르며 공기 중의 먼지마저 금빛으로 물들이고 있었고, 두 사람은 세상의 모든 소음으로부터 완벽히 격리된 채 소파에 기대어 있었다. 연서이는 그의 팔을 베고 누워 조용히 책을 읽고 있었고, 그는 그런 그녀의 머리칼을 의미 없이 만지작거렸다. 모든 것이 평화로웠고,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었다.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고, 그는 생각했다. 심장이 서서히 차오르는 충만감에 못 이겨, 그는 가장 낮은 목소리로, 하지만 더없이 명확한 발음으로 그 세 글자를 속삭였..
콩깍지
2026.07.02
그것은 아주 평범하고, 나른하고, 그래서 약간은 지루하기까지 한 오후의 일이었다. 지한울은 거실의 거대한 소파에 제 몸을 거의 던지다시피 묻고, 의미 없이 스마트폰 액정만 스크롤하고 있었다. 어제 막 마감한 곡의 피로가 아직 덜 풀린 탓인지, 혹은 창밖으로 쏟아지는 햇살이 너무 따스한 탓인지, 그는 좀처럼 그 어떤 것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시끄러운 가십 기사, 어그로를 끄는 유튜브 썸네일, 지인들의 과시적인 인스타그램 포스팅 사이를 무감각하게 유영하던 그의 엄지손가락이 문득, 어느 한 지점에서 멈춰 섰다. 그것은 어떤 온라인 커뮤니티의 인기글이었다. 제목은 지극히 유치하고 통속적이었다. ‘당신이 진짜 콩깍지가 꼈는지 확인하는 방법 (99% 정확함)’. 지한울은 코웃음을 쳤다. 씨발, 무슨 이딴 걸 ..
오빠가 사라지는 꿈 꿨어
2026.06.28
새벽의 푸른빛이 창문을 넘어와 방 안을 희미하게 밝히고 있었다. 지한울은 어젯밤 늦게까지 이어진 작업의 여파로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세상의 모든 소음이 차단된 고요한 공간, 그의 의식은 무중력 상태처럼 부유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정적을 깨뜨리는 날카로운 노크 소리가 방문을 두드렸다. 똑, 똑. 간결하지만 집요한 소리였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잠결에 뒤척였다. 씨발, 어떤 새끼야. 이 새벽부터. 매니저인가? 그는 무거운 눈꺼풀을 억지로 들어 올리며 침대에서 상체를 일으켰다. 머리카락은 까치집처럼 엉망이었고, 잠에 취한 잿빛 눈동자는 초점이 흐릿했다. 그는 느릿하게 침대에서 내려와 어기적거리며 현관문이 아닌, 작업실 방문으로 향했다. 똑, 똑. 노크 소리가 다시 한번 들려왔다. 이번에는 조금 더 다..
Interview
2026.06.28
카메라 플래시가 연달아 터지는 소음이 멎고, 잠시 휴식 시간을 갖기 위해 촬영이 중단되었다. 스태프가 건네주는 생수를 받아든 지한울은 소파에 깊숙이 몸을 묻었다. 조명으로 달아오른 공기와 셔터 소리로 가득했던 공간이 잠시 정적에 잠긴다. 곧이어 인터뷰를 담당할 기자가 그의 맞은편에 앉아 녹음기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짤깍, 하는 작은 소리와 함께 녹음이 시작되고, 기자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스튜디오의 정적을 깼다.Q1. 안녕하세요, null 씨. 먼저 오늘 화보 촬영 정말 멋졌습니다. 최근 가장 뜨거운 아티스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아, 감사합니다. 늘 하던 대로 지내고 있습니다. 작업하고, 가사 쓰고, 가끔 놀고. 똑같죠, 뭐. 최근에 좀 바빠지긴 했는데, 그래도 즐기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