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저녁 공기는 아직 따뜻했고, 해가 완전히 지지 않은 하늘은 연한 주황색과 보랏빛이 뒤섞여 있었다. 지한울은 양손 가득 마트 봉투를 들고 아파트 단지 안 보도블록 위를 걸었으며, 비닐 손잡이가 손가락 관절에 파고드는 감촉을 느끼면서도 표정 하나 찡그리지 않았다. 왼손에는 생수 두 팩과 과일이 담긴 무거운 봉투가, 오른손에는 고기와 채소, 서이가 먹고 싶다던 초코 아이스크림이 들어 있었다. 지한울은 일부러 무거운 짐을 전부 자기가 들었는데, 서이한테 들리라고 내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남자가 드는 거지, 이런 건. 그게 지한울의 방식이었고, 서이가 빈손으로 옆에서 걷는 모습이 오히려 지한울에게는 올바른 풍경이었다. 봉투 속 생수병이 걸을 때마다 부딪히며 둔탁한 소리를 냈고, 지한울의 팔뚝 근육이 무게를 지탱하느라 미세하게 긴장해 있었다.
서이가 걸음을 살짝 늦추더니 지한울의 팔 쪽을 힐끗 보았다. 그리고 입술을 삐죽 내밀며 뭔가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기 시작했는데, 지한울은 처음에는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앞만 보며 걸었다. 단지 안 가로등이 하나씩 켜지기 시작했고, 주황색 불빛이 보도블록 위에 동그란 원을 그렸다. 지한울은 엘리베이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계산하면서 걸음을 재촉하려다가, 옆에서 서이의 발소리가 점점 느려지는 것을 느꼈다. 지한울은 고개를 돌려 서이를 내려다보았으며, 서이의 입꼬리가 아래로 처져 있는 것을 발견하자 걸음을 멈추었다.
왜? 뭐 빠뜨렸어?
지한울은 봉투를 든 채로 서이를 향해 몸을 돌렸고, 서이의 표정을 읽으려는 듯 눈을 가늘게 떴다. 서이가 대답 대신 지한울의 손, 정확히는 봉투에 점령당한 양손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왜 손 안 잡아줘?'라고 말했을 때, 지한울은 0.5초 정도 멈칫했다. 그리고 곧바로 입꼬리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씨발, 이 사람 진짜. 지한울의 뇌리에서는 여러 가지 감정이 동시에 폭발했는데, 첫 번째는 '아, 존나 귀엽다'였고, 두 번째는 '내가 왜 이걸 예상 못 했지'였으며, 세 번째는 '당장 이 짐을 어떻게 처리해야 서이 손을 잡을 수 있을까'라는 실질적인 계산이었다. 세 가지 생각이 거의 동시에 처리되는 데에 1초도 걸리지 않았고, 지한울은 이미 행동으로 옮기고 있었다.
지한울은 오른손에 들고 있던 봉투의 손잡이를 이빨로 물어 잠시 고정한 뒤, 왼손의 봉투 두 개를 오른손으로 옮겨 쥐었다. 생수 두 팩의 무게가 한쪽 손에 집중되자 손가락 관절이 하얗게 변했으나, 지한울은 그 정도의 통증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표정 변화 없이 이빨에 물었던 봉투까지 오른손으로 가져왔다. 네 개의 비닐 봉투가 오른손 손가락에 줄줄이 걸렸고, 팔뚝에 힘줄이 도드라지게 서면서 근육이 무게를 지탱했다. 그리고 비어진 왼손을 서이 앞으로 내밀었다. 손바닥이 위를 향했고, 손가락이 서이를 향해 까딱거렸다.
자, 여기. 이리 와.
지한울의 목소리는 가볍고 장난스러웠으나, 눈은 서이를 똑바로 보고 있었다. 왼손 손바닥 한가운데에 오래된 흉터가 희미하게 보였고, 그 위로 가로등 불빛이 주황색 그림자를 드리웠다. 지한울은 서이가 손을 잡아 올 때까지 손을 내민 채로 기다렸으며, 입꼬리는 여전히 올라가 있었다. 속으로는 '아, 씨발, 이거 존나 무거운데'라는 생각이 스쳤으나 그것을 얼굴에 드러낼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서이가 서운하다고 하면 지한울에게는 선택지가 하나밖에 없었다. 어떻게든 해결하는 것. 팔이 빠지든, 손가락이 뭉개지든, 서이가 원하는 것을 주는 것이 지한울의 존재 이유였으니까.
뭐야, 손 안 잡을 거야? 내가 이렇게까지 했는데?
지한울은 서이가 잠시 머뭇거리는 것을 보자 한 발 다가서며 서이의 손목을 직접 잡았다. 서이의 가느다란 손목 위로 맥박이 뛰는 것이 손끝에 전해졌고, 지한울은 그 맥박을 엄지로 한 번 눌러 확인한 뒤 손목에서 손바닥으로, 손바닥에서 손가락 사이로 자기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깍지를 끼자 서이의 약지에 있는 반지 두 개가 지한울의 손가락에 닿았으며, 그 금속의 차가운 감촉이 닿을 때마다 지한울은 심장이 한 번씩 크게 뛰는 것을 느꼈다. 오른손은 봉투 네 개의 무게로 손가락이 저려 오기 시작했으나, 왼손에 서이의 온기가 채워지자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지한울은 서이의 손을 잡은 채로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으며, 오른쪽 어깨가 봉투의 무게 때문에 살짝 기울어져 있었으나 왼쪽으로는 서이에게 기대듯 어깨를 맞대고 걸었다. 보도블록 위에 두 사람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고, 가로등 아래를 지날 때마다 그림자가 짧아졌다가 다시 길어지기를 반복했다. 지한울은 걸으면서 서이의 손을 한 번 꽉 쥐었다가 풀기를 반복했는데, 그것은 무의식적인 행동이었다. 서이가 여기 있다는 것을 계속 확인하고 싶은 손이었다.
왜 손 안 잡아줘?
2026.0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