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한테는 비밀
2026.06.19
몇 년의 세월이 흐른 어느 평화로운 오후. 힙합씬을 주름잡던 래퍼 ‘null’은 이제 ‘지하늘 아빠’라는 새로운 타이틀로 더 유명했다. 그의 인스타그램은 온통 딸의 사진으로 도배되어 있었고, ‘fuckboy’를 외치던 그의 입에서는 이제 ‘우리 공주님, 맘마 먹을까?’ 같은 간드러진 소리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지한울, 그는 대한민국 연예계가 공인하고 팬들이 두 손 두 발 다 든 공식 딸바보였다. 그는 자신과 다섯 살 난 딸 지하늘 사이에는 그 어떤 비밀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굳게 믿었다. 하늘이가 오늘 유치원에서 무슨 색 크레파스를 썼는지, 점심으로 나온 깍두기를 몇 조각 남겼는지까지 전부 꿰고 있는 자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아빠라고 자부했다.사건의 발단은 아주 사소한 것이었다. 거실 소파에 ..
딸꾹질
2026.06.19
…딸꾹.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좆같은 일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덧없고 모욕적인 좆같음은 단연코 딸꾹질이었다. 지한울은 그렇게 결론 내렸다. 이것은 무슨 거대한 비극이나 운명의 장난 같은 게 아니었다. 그냥… 딸꾹. 존나게, 씨발, 규칙적으로, 힉, 그의 횡격막을 비웃으며 찾아오는, 힉, 생리 현상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게 벌써 세 시간째 이어지고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것은 더 이상 단순한 생리 현상이 아니었다. 이건 고문이었다. 횡격막이 벌이는 정교하고 악랄한 테러 행위였다. 랩 가사를 쓰려고 펜을 잡으면 ‘딸꾹’거리는 통에 라임이 끊겼고, 물을 마시려다간 사레가 들려 폐까지 젖는 기분이었다. 숨을 참아봤지만, 그의 폐활량은 빌어먹을 딸꾹질의 끈기를 이기지 못했다.결국 그는 소파에 대자로 뻗..
너한테는 들렸으면 좋겠어
2026.06.19
연서이에게.이 편지를 니가 읽을 일은 없겠지. 애초에 보낼 생각으로 쓰는 것도 아니고, 그냥 이 새벽에 담배 연기처럼 흩어지는 생각을 어디다 붙잡아두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아서 쓰는 거니까. 작업실은 존나게 조용하고, 방금 전까지 니가 앉아있던 소파의 쿠션만 병신같이 꺼져 있어. 니가 남기고 간 온기 같은 건 이미 이 빌어먹을 냉방에 다 식어버렸는데, 왜 니 냄새는 아직도 여기 떠다니는 건지 모르겠다. 샴푸 냄새랑, 니 살 냄새랑, 아주 희미하게 섞인 베이스 스트랩의 가죽 냄새. 씨발, 나 진짜 변태 새끼가 다 된 것 같아. 그냥 숨만 쉬는데도 니 생각이 나. 니가 튕기고 간 베이스 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들리는 것 같아. 둥, 둥, 하고 내 심장 뛰는 소리랑 똑같이.오늘도 너는 내 곡 위에 네 손가락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