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한울은 녹음실 부스 안에서 헤드폰을 한쪽 귀에만 걸친 채로 모니터를 노려보고 있었다. 새벽 두 시가 넘었고, 프로듀서 형은 이미 한 시간 전에 먼저 빠졌다. 믹싱 작업이 마음에 들지 않아 혼자 남아서 몇 번이고 같은 구간을 돌려 듣고 있었는데, 문득 핸드폰을 집어 들어 시간을 확인하니 벌써 이 시각이었다. 연서이한테 자기 전에 전화하겠다고 했는데, 씨발, 또 약속을 어겼다. 그는 혀를 차며 카톡을 열었지만 연서이에게서 온 메시지는 없었다. 평소 같으면 '오빠 언제 와~'라든가 귀여운 셀카 한 장이라도 와 있을 시간인데. 이상하다고 느끼면서도, 작업에 몰두하느라 깊게 생각하지 못한 채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퇴근길, 그는 페라리의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걸며 습관적으로 스마트폰을 꺼냈다. 집까지 이십 분 남짓, 신호 대기 중에 인스타 알림이나 확인하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문득 연서이에게서 여전히 아무런 연락이 없다는 사실이 신경 쓰였다. 마지막으로 카톡이 온 게 저녁 아홉 시쯤이었고, 그 이후로 읽음 표시조차 없었다. 전화를 걸어봤지만 신호음도 없이 곧바로 음성사서함으로 넘어갔다. 전원이 꺼져 있다. 지한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새벽 두 시 반에 여자친구 폰이 꺼져 있다? 아니, 침착해. 배터리 나간 거겠지. 그래도 불안한 마음을 떨칠 수 없어서, 그는 핸드폰 화면을 스와이프하여 집에 설치된 CCTV 앱을 열었다.
화면이 로딩되는 몇 초가 존나 길게 느껴졌다. 거실 카메라가 먼저 떴다. 어두운 거실, 소파 위에 아무도 없고, TV도 꺼져 있었다. 지한울은 검지로 화면을 옆으로 넘겨 현관 카메라를 확인했다. 역시 아무도 없었다. 그 다음, 복도 카메라. 그리고 그때, 화면 안에서 움직이는 작은 실루엣이 눈에 들어왔다. 연서이였다. 오프숄더 원피스를 입은 채로, 복도에 설치된 CCTV 앞에 서서 뭔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지한울은 반사적으로 볼륨을 최대로 올렸다. 차 안에 연서이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연서이는 카메라 렌즈를 올려다보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입술이 움직이고 있었고, CCTV의 마이크가 그녀의 목소리를 또렷하게 잡아냈다. '오빠, 나 폰 꺼졌어. 충전기가 차에 있는 것 같은데, 밖에 나가기 무서워서⋯⋯. 오빠 보고 있으면 좋겠다. 보고 있어?' 지한울은 핸들을 잡은 손에 힘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 씨발, 뭐야 이건. 존나 귀엽잖아. 미치겠네, 진짜. 새벽에 혼자 무서워서 CCTV한테 말 거는 거 봐. 강아지야 뭐야. 그는 CCTV 앱의 양방향 통화 버튼을 눌렀다. 스피커에서 '삐' 소리가 나며 연결음이 울렸다.
뭐야, 연서이. 거기서 뭐 해. 새벽에.
그의 목소리가 복도 천장에 달린 CCTV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졌을 것이다. 화면 속에서 연서이가 깜짝 놀라 어깨를 움츠리는 것이 보였고, 이내 카메라를 올려다보며 환하게 웃는 모습이 잡혔다. 지한울은 그 웃음에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씨발, 심장아 좀. 그는 신호등이 빨간불로 바뀐 것도 모르고 화면만 들여다보다가, 뒤에서 빵빵거리는 경적 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아, 시발. 서둘러 액셀을 밟으며, 그는 다시 화면 속 연서이를 흘깃 보았다. 그녀가 카메라 앞에서 두 손을 모으고 뭔가를 또 말하고 있었다. 그는 운전 중이라 화면에 집중할 수 없었지만, 귀만큼은 스피커에 꽂아두었다.
야, 거기 서 있지 말고 소파에 가서 앉아 있어. 감기 걸리게. 충전기는 내가 가져갈 테니까, 십 분이면 도착해. 어?
그는 목소리를 부드럽게 낮추며 말했지만, 속으로는 이미 속도를 더 올리고 있었다. 빨리 가야 해. 연서이가 혼자 무서워하고 있잖아. 새벽에, 어두운 복도에서, CCTV한테 말을 걸 정도로. 그 사실이 그의 보호 본능을 미친 듯이 자극했다. 동시에 말할 수 없이 달콤한 감정이 가슴을 채웠다. 나한테 이렇게 기대는 거잖아. 나 없으면 무서워하는 거잖아. 씨발, 존나 좋다. 이런 거. 그는 페라리의 속도를 더 높이며, 한 손으로 CCTV 화면 속 연서이를 보았다. 그녀가 고개를 까딱이며 알겠다는 듯 손을 흔드는 모습이 보였고, 지한울은 그 작은 손짓에 입꼬리가 귀까지 찢어지는 것을 느끼며 중얼거렸다.
⋯⋯존나 귀엽네, 진짜. 기다려, 금방 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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