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를 끝낸 지한울은 습관대로 화면에서 손가락을 뗐다. 정확히는 뗐다고 믿었다. 엄지가 종료 버튼 근처를 스치기는 했지만 실제로 눌리지는 않았고, 액정은 여전히 통화 중 화면을 띄운 채 그의 손안에서 미끄러지듯 침대 위로 떨어졌다. 지한울은 그 사실을 전혀 모르는 얼굴로 기지개를 켜며 침실을 나섰다. 작업실 겸 서재로 쓰는 방까지 걸어가는 동안 슬리퍼가 대리석 바닥에 끌리는 소리가 났고, 그 소리는 침대 위 스피커를 통해 서이의 귀에 고스란히 흘러 들어갔다.

수화기 너머로 넘어오는 것들은 사소하고 지저분할 정도로 생생했다. 냉장고 문이 열리며 나는 고무 패킹 떨어지는 소리, 캔 탭이 따지는 짧고 날카로운 소리, 그다음에 이어지는 목울대 넘기는 소리와 만족스러운 한숨. 라이터를 몇 번 헛돌리다가 불이 붙는 소리와 창문을 밀어 여는 소리도 들렸다. 지한울은 베란다 난간에 팔을 걸치고 담배를 문 채 아무 생각 없이 흥얼거리기 시작했으며, 그건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은 멜로디였다.

서이야아…… 보고 싶다아…… 방금 끊었는데 왜 벌써 보고 싶냐, 미친 거 아냐 진짜.

혼잣말은 노래 사이사이에 섞여 나왔다. 지한울은 자기 목소리가 어디로 송출되고 있는지 알 리가 없었으므로 필터를 하나도 걸지 않았다. 담배를 끄고 들어와서는 소파에 널브러져 서이의 인스타 게시물을 위에서 아래로 훑었고, 이미 백 번은 봤을 사진 앞에서 또 멈춰서 씨발 존나 예쁘네, 하고 낮게 중얼거렸다. 그다음에는 손톱으로 액정을 톡톡 두드리는 소리, 소파 쿠션에 얼굴을 파묻으며 내는 앓는 소리 같은 게 이어졌다. 세탁기 종료음이 울리자 그는 궁시렁대며 일어나 빨래를 꺼냈고, 서이의 옷을 개면서 혼자 대화를 이어 갔다.

이건 또 언제 벗어 놨어…… 아, 이거 파리에서 산 거네. 이거 입은 날 존나 예뻤는데. 아 진짜 어떡하냐 나. 어? 어떡하냐고, 지한울아.

그 상태로 이십 분쯤 흘렀다. 지한울이 이상함을 눈치챈 건 형한테서 온 부재중 알림을 확인하려고 휴대폰을 집어 들었을 때였다. 화면 상단에 붉게 켜진 통화 시간 표시가 눈에 들어왔고, 숫자는 태연하게 이십삼 분을 넘어가고 있었다. 발신자 이름 자리에 박힌 '서이♡'라는 글자를 확인한 순간 지한울의 손에서 개던 수건이 툭 떨어졌다. 그는 이 초쯤 그대로 굳어 있다가 휴대폰을 귀에 갖다 붙였고, 목소리가 평소보다 반음쯤 높게 갈라져 나왔다.

연서이. 너 설마 계속 듣고 있었어? 야, 왜 말을 안 해. 아니 왜 말을 안 하냐고오…… 아아아…… 죽고 싶어어. 진짜 죽고 싶어.

지한울은 소파에 그대로 주저앉아 한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얼굴이 뜨거워지는 게 손바닥 안쪽으로 느껴졌으며, 방금 이십 분 동안 자기가 뱉은 말들이 순서대로 재생되기 시작하자 발끝까지 오그라들었다. 노래를 흥얼거린 것까지는 봐줄 만한데 네 사진 보면서 혼자 앓는 소리 낸 것과 빨래 개면서 혼잣말한 것이 문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한울은 전화를 끊지 않았다. 오히려 휴대폰을 귀에 더 바짝 붙이고는 소파 등받이에 머리를 뒤로 젖혔으며, 천장을 보면서 항복하듯 길게 숨을 뱉었다.

됐어, 그냥 다 들었다고 쳐. 어차피 다 진심이었으니까 취소할 것도 없고. 대신 너 지금 웃었지? 웃은 거 다 들렸어. 야, 나 지금 갈까? 진짜 간다? 차 키 잡았어. 지금 나가면 이십 분 컷인데.

말은 그렇게 하면서 지한울은 이미 현관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슬리퍼를 벗어 던지고 운동화를 구겨 신는 소리, 벽에 걸린 키를 낚아채는 소리가 차례로 수화기를 타고 넘어갔다. 창피함은 이 분도 못 가서 사라졌고 그 자리를 대신 채운 건 지금 당장 서이 얼굴을 보고 싶다는 충동이었다. 지한울은 엘리베이터 버튼을 연타하면서 휴대폰을 어깨와 귀 사이에 끼웠으며, 목소리에서는 조금 전의 절망이 완전히 걷혀 있었다.

끊지 마. 도착할 때까지 그냥 켜 놔. 아까처럼 몰래 듣지 말고, 이번엔 대답도 하면서. 어차피 나는 너 목소리 없으면 운전도 못 하는 몸이 됐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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