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사랑니 2026.08.15

 

 

첫 사랑니 (Rum Pum Pum Pum)

f(x) · Pink Tape - The 2nd Album · Song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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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한울에게 사랑이란, 오랫동안 이가 빠진 자리처럼 텅 비어 있던 것이었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집에서는 주먹이 날아왔고, 학교에서는 아무도 자기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주지 않았다. 사랑이라는 단어를 처음 배운 것은 텔레비전 속에서였고, 그것이 실제로 존재하는 감정인지 확인할 길이 없었다. 엄마가 유서를 남기고 떠난 날, 지한울은 사랑이란 결국 사라지는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고, 믿으려 해도 배신당하는 것. 그래서 여자를 만나도 깊이 들어가지 않았다. 좋아한다는 말은 쉽게 했지만 그 말이 어디에서 왔는지는 자기도 몰랐다. 가슴 한가운데에 뚫린 구멍을 누군가의 체온으로 잠깐 메우는 것, 그게 지한울이 아는 연애의 전부였다. 여자들은 왔다가 갔고, 지한울은 그때마다 담배를 한 대 피우며 '뭐, 원래 그런 거지'라고 중얼거렸다. 아프지 않았다. 진짜로 아프지 않았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아무것도 주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사랑니라는 게 그렇다. 다른 이가 다 자리를 잡은 뒤에, 한참 뒤늦게 잇몸을 뚫고 올라온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타이밍에, 아무도 비워두지 않은 자리를 억지로 밀어내며 자라난다. 처음에는 그게 뭔지도 모른다. 그냥 어딘가가 욱신거리고, 신경이 쓰이고, 자꾸만 혀끝이 그 자리를 건드리게 된다. 연서이가 지한울의 삶에 들어온 것이 정확히 그랬다. 2024년 3월, 지인의 소개로 녹음실에서 처음 마주한 여자. 검은 머리카락을 리본으로 묶고, 베이스 기타를 품에 안은 채 조용히 인사하던 여자. 지한울은 그때 별 생각이 없었다. 예쁘다고는 생각했다. 하지만 예쁜 여자는 세상에 많았고, 지한울의 주변에는 항상 여자가 있었으니까.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연서이와 함께 작업하는 시간이 늘어갈수록, 지한울의 잇몸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연서이가 베이스 라인을 잡으며 고개를 살짝 기울이는 모습을 볼 때, 녹음실 한구석에서 커피를 홀짝이며 조용히 웃는 모습을 볼 때, 지한울의 가슴 어딘가에서 낯선 통증이 찾아왔다. 그것은 이전의 여자들에게서는 한 번도 느끼지 못한 종류의 것이었다. 단순히 예쁘다거나, 같이 자고 싶다거나, 그런 차원의 감정이 아니었다. 연서이가 웃으면 자기도 모르게 웃고 있었고, 연서이가 지쳐 보이면 이유 없이 가슴이 답답해졌다. 지한울은 그 감정의 정체를 몰랐다. 그냥 이상하다고만 생각했다. 잇몸이 부어오르는 것처럼, 불편하고 낯설고, 그런데 자꾸 신경이 쓰이는 것.

사랑니가 자라나는 과정은 아프다. 기존의 치아들을 밀어내고, 잇몸을 찢으며 올라오는 것이니까. 지한울에게도 그랬다. 연서이를 좋아한다는 것을 인정하기까지, 지한울은 자기 안의 수많은 것들과 싸워야 했다. 사랑은 사라진다는 믿음, 누군가에게 마음을 주면 결국 버림받는다는 두려움, 자기 같은 인간은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는 자기혐오. 그 모든 것들이 단단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연서이라는 사랑니가 그것들을 하나하나 밀어내기 시작했다. 고백을 하던 날 밤, 지한울의 목소리는 떨렸다. 평소의 여유로운 모습은 온데간데없었고, 씨발, 이게 뭐라고 이렇게 떨리냐고 속으로 욕을 하면서도 입에서 나온 말은 순도 백 퍼센트의 진심이었다. 연서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자기 손을 잡아줬을 때, 지한울은 잇몸을 뚫고 올라온 사랑니가 마침내 제자리를 찾은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 뒤로 1년이 지났다. 사랑니는 완전히 자리를 잡았고, 이제는 그것 없이는 살 수 없게 되었다. 연서이라는 존재가 지한울의 삶 깊숙이 뿌리를 내렸고, 그 뿌리는 지한울의 심장을 감싸 안아 박동을 유지시켜 주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옆에 서이가 있었고, 밤에 잠들 때면 서이의 숨소리가 자장가가 되어 주었다. 파리에서 반지를 끼워줄 때, 서이의 약지에 다이아몬드가 안착하는 것을 보며 지한울은 생각했다. 이게 진짜 첫사랑이구나. 스무 살이 넘어서, 수많은 여자를 만나고 나서야, 뒤늦게 찾아온 진짜 첫사랑. 다른 이빨들이 다 자란 뒤에 마지막으로 올라오는 사랑니처럼, 모든 가짜 감정들이 지나간 뒤에야 비로소 찾아온 진짜.

지한울은 알고 있었다. 사랑니는 뽑아버리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아프다고, 필요 없다고, 불편하다고 뽑아버리는 사람들. 하지만 지한울은 절대로 그러지 않을 것이었다. 이 사랑니는 아파도 좋고, 불편해도 좋고, 잇몸이 찢어져도 좋았다. 연서이라는 이름의 사랑니가 자기 안에 영원히 박혀 있기를, 뿌리째 자기 심장에 감겨 있기를, 지한울은 매일 밤 기도하듯 바랐다. 그리고 그 기도는 매일 아침 서이의 잠든 얼굴을 확인하는 것으로 응답받았다. 오늘도 여기 있네. 내 사랑니. 내 첫사랑. 내 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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