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1년의 어느 금요일 오후, 연서이는 현관문이 쾅 열리는 소리와 함께 작은 운동화가 바닥을 찍어대는 소리를 들었다. 다섯 살이 된 지서윤이 어린이집 가방을 질질 끌며 거실로 뛰어 들어왔고, 뒤따라 들어온 지한울이 아이를 데리러 갔다 온 모양인지 차 키를 현관 선반 위에 툭 올려놓으며 신발을 벗고 있었다. 서이는 주방에서 과일을 썰다 말고 고개를 내밀어 딸의 얼굴을 확인했는데, 서윤이의 표정이 유난히 신이 나 있었다. 볼이 사과처럼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고, 입꼬리가 귀 옆까지 올라가 있었으며, 눈동자는 아빠에게서 물려받은 잿빛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엄마아, 나 오늘 친구들한테 존나 인기 많았어!

연서이의 손에서 과일칼이 멈췄다. 존나. 다섯 살짜리 입에서 나온 그 단어가 귀를 때리는 순간, 서이는 자기가 잘못 들은 건가 싶어 눈을 두어 번 깜빡였다. 그러나 서윤이는 아무런 죄의식도 없이 운동화를 아무렇게나 벗어던지며 거실 소파 위로 올라갔고, 가방에서 그림 그린 종이를 꺼내 흔들면서 신나게 떠들기 시작했다. 서이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현관 쪽에 서 있는 지한울에게로 향했는데, 그는 서이와 눈이 마주치자 뭔가 눈치를 챈 듯 입술을 살짝 오므리며 시선을 피했다.

선생님이 그림 잘 그렸다 그랬어! 나 존나 기분 좋았거든!

두 번째였다. 서이는 과일칼을 도마 위에 내려놓고 손을 행주에 닦으며 소파 쪽으로 걸어갔다. 서윤이는 소파 위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 자기가 그린 그림을 펼쳐 보여주고 있었는데, 거기에는 노란 머리의 사람과 검은 머리의 사람이 손을 잡고 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서윤이가 엄마와 아빠라고 했다. 서이는 딸의 머리를 쓸어넘기며 눈높이를 맞추고 부드럽게 물었다.

서윤아, 그 말 어디서 배웠어? 존나, 라는 말.

서윤이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대답했다.

아빠가 맨날 하잖아! 아빠가 엄마한테 '존나 좋아'도 하고 '존나 예뻐'도 하고, 나한테도 '존나 귀엽다' 하잖아!

서이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거실 입구에 기대서 있는 지한울을 바라보았다. 그는 한 손으로 뒷목을 긁으며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었고, 입술을 꾹 다문 채 휘파람이라도 불 것 같은 표정이었다. 서이의 시선을 느꼈는지 그가 슬금슬금 눈동자만 내려 서이를 살폈는데, 서이의 무표정한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두 손을 모아 합장하듯 올리며 입을 열었다.

야, 나 저렇게 많이 했나?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서이는 대답 대신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어린이집 알림장 앱을 열자 오늘 날짜의 알림이 하나 떠 있었고, 담임 선생님이 작성한 내용이 화면에 길게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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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바라기반 알림장 (2031.10.17 금)

서윤이 어머님, 안녕하세요~!
오늘 서윤이가 미술 시간에 가족 그림을 아주 예쁘게 그렸답니다 ♡ 그런데 완성하고 나서 친구들에게 
이거 존나 잘 그렸지!라고 말해서 선생님이 깜짝 놀랐어요 😅 조심스럽게 그 말은 어린이집에서 쓰면 안 되는 말이라고 알려줬더니, 왜요? 아빠가 맨날 하는데?라고 되물었습니다.

또 점심시간에 급식 먹으면서 
아 씨, 이거 맛있다라고도 했는데요, 친구들이 따라 할까 봐 조금 걱정이 됩니다 ㅠㅠ 가정에서도 살짝 지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 외에는 친구들과 잘 어울려 놀았고, 낮잠도 잘 잤습니다. 좋은 주말 보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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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이는 화면을 지한울 쪽으로 돌려 보여주었다. 지한울은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화면을 들여다보다가, '아빠가 맨날 하는데?'라는 부분에서 시선이 멈추더니 양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그 자리에 쪼그려 앉았다. 귀 끝이 빨갛게 물들어 있었고, 손가락 사이로 새어 나오는 목소리가 낮게 신음처럼 흘러나왔다.

아아아⋯⋯. 죽고 싶어어. 진짜 미안해⋯⋯.

서이는 팔짱을 끼고 그를 내려다보며 입술을 깨물었지만, 사실 화가 난 것보다는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참고 있었다. 서윤이가 아빠의 말투를 그대로 복사한 것이 예상 밖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지한울은 집에서 서이에게, 그리고 서윤이에게 습관적으로 욕설 섞인 칭찬을 달고 살았고, 서이가 몇 번이나 아이 앞에서는 조심하라고 말했음에도 그때뿐이었다. 서이는 한숨을 내쉬며 소파에 앉아 서윤이의 머리를 쓸어넘겼고, 서윤이는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아빠가 왜 바닥에 앉아 있는지 궁금한 듯 고개를 빼꼼 내밀고 있었다.

서윤아, 그 말은 어른들만 쓰는 말이야. 서윤이는 아직 안 돼, 알겠지?

서윤이가 입을 삐죽거리며 왜에에 하고 늘어지자, 바닥에 쪼그려 앉아 있던 지한울이 벌떡 일어나 딸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는 딸의 양손을 잡고 아주 심각하고 진지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자기가 무슨 독립운동 자금을 전달하는 비밀 요원이라도 된 것처럼 목소리를 낮춰 속삭였다.

서윤아, 이건 아빠랑 너만의 비밀인데. 사실 아빠는 공주님이야. 그래서 마법의 주문을 외워야 해. 근데 그 주문을 아무 데서나 쓰면 마법의 힘이 약해져. 집에서, 아빠랑 엄마 앞에서만 써야 돼. 알았지? 밖에서는 절대 쓰면 안 돼. 약속. 선생님한테도 비밀이야.

서윤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빠를 쳐다보다가, '공주님'이라는 말에 솔깃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서이는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터뜨렸다. 저런 말도 안 되는 변명에 속아 넘어가는 딸이나, 저런 변명을 생각해 내는 아빠나 정말이지 똑 닮은 부녀였다. 서윤이가 고개를 끄덕이자 지한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고, 서이는 그 모습을 보다가 결국 소파에 등을 기대며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날 저녁, 지한울은 서윤이가 잠든 후에야 조심스럽게 서이의 눈치를 보며 옆에 앉았다.

진짜 미안해. 내가 진짜, 입을 꼬매든가 해야지. 근데 서윤이가 내 말 따라 하는 거 보니까 또 귀엽긴 하더라. 아니, 미안.

지한울은 서이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중얼거렸고, 서이는 그의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빗어주며 대답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자책과 어쩔 수 없는 팔불출 아빠의 마음이 뒤섞여 있었다. 서이는 피식 웃으며 그의 뺨을 쓰다듬었다.

내일부터 존나, 씨, 이거 한 번 쓸 때마다 천 원씩 저금통에 넣는 걸로 하자. 서윤이 까까 사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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