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지서율이고, 올해 여섯 살이다. 아빠는 나한테 '율이'라고 부르고, 엄마는 '서율아' 아니면 '우리 아가'라고 부른다. 나는 우리 집이 좋다. 우리 집은 되게 높은 데 있어서 창문 밖으로 보면 세상이 다 작아 보인다. 아빠가 여기는 하늘에서 제일 가까운 집이라고 했는데, 유치원에서 그 말을 했더니 친구들이 안 믿었다. 진짠데.
오늘은 일요일이라서 아빠가 집에 있다. 아빠는 평소에 '작업실'이라는 곳에 가는데, 거기서 뭘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노래를 만든다고 했다. 근데 아빠가 만든 노래를 유치원에서 틀어줬을 때 선생님이 깜짝 놀라면서 서율아, 이거 너희 아빠가 만든 거 맞아? 했다. 맞다고 했더니 선생님 얼굴이 빨개졌다. 왜 빨개졌는지는 모르겠다. 아빠한테 물어봤더니 아빠가 커피를 뿜었다. 엄마는 옆에서 웃다가 아빠 등을 두드려 줬다. 아빠가 야, 유치원에서 내 노래 왜 틀어, 씨... 아, 아니다. 하다가 말을 삼켰다. 아빠는 가끔 말하다가 갑자기 멈추는데, 그러면 엄마가 눈을 크게 뜨고 아빠를 본다. 그러면 아빠는 헛기침을 하면서 아무것도 아니야, 율아.라고 한다. 나는 아빠가 삼킨 말이 뭔지 되게 궁금하다.
아빠는 되게 잘생겼다. 이건 내가 아빠 딸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다. 유치원 앞에 아빠가 데리러 오면 다른 엄마들이 쳐다본다. 한번은 친구 엄마가 서율아, 아빠 연예인이야?라고 물어봤다. 아빠는 연예인은 아닌데 래퍼라고 했다. 래퍼가 뭐냐고 물어봤더니 말을 되게 빠르고 멋있게 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근데 아빠가 멋있게 말하는 건 맞는 것 같다. 아빠가 엄마한테 말할 때는 목소리가 좀 달라진다. 평소에는 되게 시끄럽고 장난을 많이 치는데, 엄마 눈을 보면서 말할 때는 목소리가 낮아지고 좀 느려진다. 나는 그걸 '엄마 목소리'라고 부른다. 아빠한테 말했더니 아빠가 얼굴이 빨개지면서 뭔 소리야, 나 원래 이래.라고 했는데 원래 그런 거 아니다. 나는 다 안다.
엄마는 되게 예쁘다. 머리카락이 까맣고 길어서 내가 자기 전에 만지면 되게 부드럽다. 엄마는 조용한 사람인데, 가끔 엉뚱한 말을 한다. 어제도 아빠가 라면을 끓여주고 있었는데 엄마가 갑자기 오빠, 라면에 사랑 넣었어?라고 했다. 아빠가 어, 한 스푼.이라고 바로 대답했다. 나는 사랑이 눈에 안 보이는 건데 어떻게 넣냐고 물어봤더니 둘이 동시에 웃었다. 어른들은 이상하다. 근데 아빠가 끓이는 라면은 진짜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 아빠가 율아, 아빠 라면은 DNA에 새겨진 거야.라고 했다. DNA가 뭔지 몰라서 물어봤더니 몸 안에 있는 되게 작은 실 같은 건데, 아빠가 라면 잘 끓이는 게 거기에 적혀 있어.라고 했다. 그래서 나도 라면 잘 끓일 수 있냐고 했더니 아빠가 당연하지, 우리 율이는 내 딸이니까.라고 하면서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엄마는 옆에서 웃으면서 기타 같은 걸 튕기고 있었다. 엄마가 튕기는 건 기타보다 좀 더 크고 소리가 낮은 건데, 이름이 '베이스'라고 한다. 엄마가 베이스를 칠 때 나는 엄마 옆에 앉아서 듣는 게 좋다. 배가 울리는 것처럼 둥둥 하는 소리가 나서 졸릴 때 들으면 잠이 잘 온다.
아빠는 엄마를 되게 좋아한다. 이건 내가 세상에서 제일 확실하게 아는 거다. 아빠는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엄마 얼굴을 본다. 엄마가 아직 자고 있으면 아빠가 엄마 이마에 뽀뽀를 하고, 그 다음에 내 방에 와서 나한테도 뽀뽀를 한다. 순서가 항상 엄마가 먼저다. 한번은 그게 서운해서 아빠, 나 먼저 뽀뽀해 줘.라고 했더니 아빠가 되게 미안한 얼굴을 하면서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아아아, 율아 미안해, 진짜 미안해.라고 했다. 되게 크게 반성하는 것 같아서 내가 오히려 놀랐다. 그 뒤로 아빠는 내 방에 먼저 와서 뽀뽀를 하고 엄마한테 간다. 근데 엄마한테 가면 되게 오래 안 나온다. 뭘 하는지 모르겠는데, 가끔 엄마가 웃는 소리가 들린다. 나도 끼고 싶어서 문을 열려고 하면 잠겨 있을 때가 있다. 아빠가 나중에 나와서 율아, 엄마 아빠 회의 중이었어.라고 했는데, 회의가 뭔지 물어보니까 중요한 얘기 하는 거.라고 했다. 아빠는 회의를 되게 자주 한다.
아빠가 화나면 되게 무섭다. 근데 나한테 화를 낸 적은 한 번도 없다. 엄마한테도 소리 지르는 걸 본 적이 없다. 아빠가 화를 내는 건 전화할 때다. 근데 전화할 때는 목소리가 완전히 달라진다. 눈이 진짜 무서워진다. 나는 그럴 때 아빠한테 말을 걸지 않는다. 엄마도 전화할 때는 조용히 있는다. 근데 전화가 끝나면 아빠는 다시 원래 아빠로 돌아와서 나랑 장난을 친다. 나는 그게 좀 신기하다.
오늘 아침에도 아빠가 전화를 했는데, 전화받기 전에 엄마가 아빠한테 무슨 말을 했다. 아빠가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한테 와서 율아, 오늘은 아빠가 데려다줄게.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짐을 빨리 챙겨서 아빠 차에 탔다. 차 안에서 아빠가 라디오를 틀었는데, 라디오에서 아빠 목소리가 나왔다. 아빠가 이거 내 목소리네.라고 하면서 웃었다. 나는 되게 신났다. 유치원에 도착해서 아빠가 내리고 나한테 손을 흔들어 줬다. 나도 흔들었다.
지서율의 기록
2026.0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