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한울은 거실 소파에 길게 누워, 팔을 머리 뒤로 깍지 낀 채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창문으로 쏟아지는 오후의 햇살이 먼지를 금가루처럼 반짝이게 만들었다. 며칠간의 녹음 작업이 끝나고 찾아온 오랜만의 평화였다. 귓가에는 비트 대신 집 안의 고요한 공기가 흘렀고, 그 공기 속에는 연서이가 쓰는 샴푸 냄새가 희미하게 섞여 있었다. 그는 눈을 감고 만족스러운 한숨을 내쉬었다. 바로 이거지. 이 평온함. 이 안정감. 그의 마누라가 같은 공간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세상 모든 소음이 차단되는 기분. 그는 서이가 방에서 나오는 기척에 감았던 눈을 슬며시 떴다. 그녀는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이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표정이 미묘했다. 피곤한 것 같기도 하고, 무언가 생각에 잠긴 것 같기도 한, 딱 잘라 정의하기 힘든 얼굴. 그 얼굴로 그녀는 소파 옆으로 다가와, 나른하게 누워있는 그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지한울은 몸을 일으키려다, 그냥 그 상태로 팔을 뻗어 그녀의 손목을 가볍게 잡았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목구멍까지 차오른 질문을 삼키고, 그는 그저 그녀의 시선을 마주했다. 그러자 서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나지막하고, 조금은 잠긴 목소리로. ‘오빠, 나 한 번만 꽉 안아주면 안 돼? 있는 힘껏.’ 그 말에 지한울의 입꼬리가 저절로 호선을 그렸다. 있는 힘껏. 그녀가 먼저, 그것도 ‘있는 힘껏’ 안아달라고 부탁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보통은 그가 일방적으로 달려들어 매달리고, 그녀는 못 이기는 척 받아주는 식이었다. 그런데 오늘따라 웬일이지. 그는 잡고 있던 손목을 끌어당겨 그녀가 자신의 위로 쓰러지게 만들었다. 소파가 가볍게 삐걱거렸고, 그녀의 체중이 그의 몸 위로 온전히 실렸다. 그는 씩 웃으며 그녀의 등을 감싸 안았다. 이런 부탁은 언제나 환영이지. 마누라.
아, 뭐야. 웬일로 이런 예쁜 부탁을 다 하고. 당연히 되지. 우리 마누라 뼈 부서지도록 안아줄게.
그는 농담처럼 말하며, 그녀의 등을 감싸 안은 팔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 서이가 그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었고,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그의 턱과 목을 간질였다. 그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녀에게서 나는 포근하고 달콤한 향기가 폐부 깊숙이 스며들어, 세포 하나하나를 행복감으로 물들이는 것 같았다. 그는 팔을 더 조여 그녀의 몸을 자신에게 밀착시켰다. 빈틈없이, 한 치의 공간도 없이. 마치 그녀를 자신의 몸에 녹여 하나가 되려는 것처럼. 그의 등 근육이 단단하게 수축했고, 온몸의 힘을 팔에 집중했다. 그녀의 작은 몸이 그의 품 안에서 완벽하게 압축되는 감각.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충만함. 그는 그녀의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사랑해. 진짜 존나 사랑해, 서이야. 바로 그 순간이었다. 행복의 정점에서, 그의 모든 감각이 그녀에게 집중되어 있던 바로 그때.
뚜두둑.
그의 등 뒤에서, 정확히는 그녀의 허리 부근을 감싸고 있던 그의 팔 아래에서, 나무토막이 쪼개지는 것 같은 소리가 선명하게 울렸다. 짧고, 건조하고, 날카로운 파열음. 지한울의 온몸이 그 자리에서 돌처럼 굳었다. 방금 뭐지. 이게 무슨 소리지. 1초 전까지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감에 젖어있던 그의 뇌가 차갑게 식어 내렸다. 팔에 집중했던 모든 힘이 순식간에 증발하고, 몸이 허공에 뜬 것처럼 감각이 아득해졌다. 그는 숨 쉬는 법조차 잊어버린 채, 품 안에 있는 서이를 미동도 없이 안고 있었다. 귓가에서는 방금 들었던 ‘뚜두둑’ 소리가 수십, 수백 번 반복 재생되며 머릿속을 헤집었다. 뼈. 뼈가 부러지는 소리. 아니, 부러졌다기보다는 어긋나거나, 금이 가는 소리. 내가. 내 팔 힘으로. 서이를. 그의 눈동자가 초점을 잃고 세차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지한울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고개를 숙여 자신의 품을 내려다보았다. 서이는 여전히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 미동도 없었다. 자는 건가? 아니면 기절했나? 아니, 씨발, 혹시 죽었나? 그 끔찍한 생각에 심장이 발끝까지 곤두박질쳤다. 그는 그녀를 감싸 안았던 팔을 풀고 싶었지만, 그랬다가 정말로 부러진 허리가 두 동강 날 것만 같은 공포에 사로잡혀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그녀를 사랑해서, 너무 사랑해서 온 힘을 다해 끌어안았을 뿐인데. 그 힘이 그녀를 부서뜨렸다는 믿을 수 없는 현실 앞에서 그의 이성은 완전히 마비되었다. 입술이 바싹 말라붙고,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그는 간신히 마른 침을 삼키며, 거의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떨림을 감출 수 없는, 겁에 질린 목소리였다.
서, 서이야⋯⋯? 괜찮, 괜찮아? 마, 말 좀 해봐. 어? 제발⋯⋯.
그녀의 어깨를 붙잡고 살짝 흔들어보려 했지만, 손이 사시나무처럼 떨려 뜻대로 되지 않았다. 세상의 모든 색이 빠져나간 것처럼 시야가 흑백으로 변했다. 청각은 예민해져서, 제 심장이 미친 듯이 울리는 소리와 서이의 숨소리만을 집요하게 쫓았다. 다행히 숨은 쉬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그녀는 아무런 대답도, 움직임도 없었다. 지한울의 머릿속에서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펼쳐졌다. 앰뷸런스를 불러야 하나? 아니, 그전에 내가 먼저 확인해야 하나? 하지만 어디를 어떻게? 만약 정말로 허리가 부러졌다면, 내가 섣불리 움직였다가 평생 못 걷게 되면 어떡하지? 아아, 씨발, 씨발! 그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왜 나는 항상 이 모양일까. 왜 내 손에 들어온 소중한 것들은 전부 망가뜨리는 걸까.
결국 그는 이성을 거의 놓아버린 채, 거의 울부짖듯이 그녀를 향해 소리쳤다. 그의 목소리는 절망과 공포로 갈라져 있었다. 품에 안은 몸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는 그저 얼어붙은 채로 고개만 숙여 그녀의 정수리를 내려다볼 뿐이었다. 불과 몇 분 전, 이 품 안에서 느꼈던 충만한 행복감은 이제 날카로운 파편이 되어 그의 심장을 찌르고 있었다. 그는 서이의 허리를 부순 괴물이 되었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제 여자의 뼈를 부순, 그런 미친 새끼가 되어버렸다. 그는 다시 한번, 이번에는 더욱 처절하게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터져 나올 것 같은, 비참한 목소리였다. 그는 그녀를 잃는다는 상상만으로도 숨이 막혔다. 이대로 그녀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그는 주저 없이 이 자리에서 자신의 목을 그어버릴 것이다.
연서이! 씨발, 대답 좀 해봐! 나 무서워 죽겠다고, 진짜! 제발, 응? 아, 아아⋯⋯. 어떡해, 진짜 어떡해⋯⋯.
지한울의 진실된 속마음: 내가… 내가 서이를 부쉈어. 내 힘으로. 어떡하지? 씨발, 진짜 어떡하지? 신이시여 제발. 제발 아무 일도 없게 해주세요. 내가 다 잘못했으니까 제발… ((((;゚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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