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한울, 혹은 래퍼 null은 스스로를 꽤나 이성적이고 통제력이 강한 인간이라고 여겼다. 적어도 음악과 일에 있어서는 그랬다. 그는 자신의 감정을 가사의 재료로 사용하고 무대 위에서 상품으로 포장하여 판매하는 일에 능숙했다. 사랑, 분노, 우울, 환희. 그 모든 것은 결국 돈이 되는 단어의 조합이었고, 그는 그 단어들을 조합하는 장인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그 단단했던 자아의 경계선에 미세한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모든 감정의 근원과 목적지가 단 한 사람, 연서이라는 존재를 향하게 되면서부터였다. 그 자각은 늦은 밤, 홀로 남은 작업실의 적막 속에서 불쑥 찾아왔다. 방금 끝낸 믹싱 작업의 피로감보다 더 짙게, 그의 온몸을 잠식하는 것은 이유 모를 허전함과 그녀를 향한 지독한 그리움이었다. 그는 마른세수를 하며 중얼거렸다. 씨발, 나 진짜 연서이 중독인가? 그 우스꽝스러운 단어가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웃음 대신 짙은 한숨이 터져 나왔다. 부정하고 싶었지만, 머릿속은 이미 반박할 수 없는 증거들을 낱낱이 펼쳐 보이고 있었다. 그가 ‘연서이 중독’이라는 진단을 스스로에게 내리게 만든 결정적인 사건들은 지극히 사소하고 일상적인 순간들이었다.

첫 번째 증상은 후각의 반란에서 시작되었다. 며칠 전, 지방 공연 스케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꼬박 이틀을 그녀와 떨어져 지내야 했던 날이었다. 그는 괜찮을 거라고, 일이니까 당연한 거라고 스스로를 몇 번이나 다독였다. 하지만 최고급 호텔의 스위트룸에 들어선 순간, 그를 맞이한 것은 편안함이 아닌 낯선 공기였다. 값비싼 디퓨저 향과 방금 세탁을 마친 시트의 냄새가 코를 찔렀지만, 그의 뇌는 필사적으로 익숙한 향기를 찾아 헤맸다. 연서이의 살냄새, 그녀가 쓰는 샴푸와 바디워시가 뒤섞인, 세상에서 유일하게 그의 신경을 이완시키는 그 향기가 부재한다는 사실이 그를 미치게 만들었다. 그는 결국 자신의 캐리어 깊숙한 곳에 넣어두었던, 그녀가 평소에 입던 회색 니트 원피스를 꺼내 들었다. 함께 짐을 쌀 때 ‘오빠, 나 보고 싶을 때 맡아’라며 장난처럼 그녀가 넣어준 옷이었다. 그는 그 옷에 코를 박고 미친놈처럼 그 향기를 들이마셨다. 옷에 희미하게 남은 그녀의 체취가 폐부 깊숙이 스며드는 순간, 비로소 경직되었던 어깨의 힘이 풀렸다. 그는 그날 밤, 그녀의 옷을 끌어안고서야 겨우 잠이 들 수 있었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떴을 때, 그는 자신의 행동이 얼마나 병신 같았는지 자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녀의 향기 없이는 단 하룻밤도 제대로 잠들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다. 이건 명백한 금단 현상이었다.

두 번째 에피소드는 미각과 관련된 기억이었다. 그는 연서이를 만나기 전까지 음식의 맛에 그리 민감한 편이 아니었다. 비싼 레스토랑의 코스 요리나 편의점의 삼각김밥이나, 배를 채운다는 기능적 측면에서는 별반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 그가 미식의 즐거움을 깨닫게 된 것은 순전히 연서이 덕분이었다. 그녀는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을 지었고, 그는 그 표정을 보기 위해 전국의 맛집을 검색하는 취미가 생겼다. 문제의 그날은, 유명 프로듀서 형들과의 중요한 저녁 약속이 있던 날이었다. 강남의 한복판에 위치한 최고급 한우 오마카세, 한 점에 몇만 원을 호가하는 살치살이 그의 앞에 놓였다. 모두가 감탄사를 연발하며 고기를 입에 넣을 때, 그 역시 의무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맛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입안에서 녹아내리는 육즙도, 고소한 풍미도 그저 기름진 감각일 뿐이었다. 그는 문득 며칠 전, 연서이와 함께 집에서 끓여 먹었던 라면을 떠올렸다. 그녀가 옆에서 ‘오빠가 끓인 라면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어’라며 김치를 쭉 찢어 올려주던 그 순간. 불어 터진 면발과 평범한 국물이었지만, 그는 그 라면이 세상 그 어떤 진수성찬보다 맛있었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그 순간, 지한울은 깨달았다. 자신에게 음식의 맛을 결정하는 것은 더 이상 혀의 미뢰가 아니라, ‘연서이가 옆에 있는가’의 여부라는 것을. 그녀가 없는 식탁은 그저 사료를 섭취하는 공간에 불과했다. 그는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레스토랑을 빠져나왔다. 그리고는 망설임 없이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 당장 만나러 가겠다고, 네가 끓여주는 라면이 먹고 싶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를 ‘중독자’로 확신하게 만든 것은, 그의 음악 그 자체였다. 그의 랩은 그의 인생이었고 자존심이었다. 그는 언제나 자신의 이야기를 썼고, 자신의 감정을 뱉었다. 연서이를 만나고 나서 그의 가사는 온통 그녀에 대한 사랑 노래로 채워졌다. 팬들은 null이 변했다며 수군거렸지만 그는 상관없었다. 오히려 자신의 모든 영감이 그녀로부터 온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웠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다른 곳에서 터졌다. 그는 최근 새로운 앨범의 타이틀 곡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이상하게 가사가 한 줄도 써지지 않았다. 며칠 밤을 새워 비트 위에 이런저런 단어를 얹어보았지만, 모든 것이 공허하고 가식적으로 들렸다. 그는 극심한 슬럼프에 빠졌고, 예민함이 극에 달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결국 작업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소파에 기대 잠든 연서이를 발견했다. 그녀의 손에는 베이스가 들려 있었고, 헤드폰에서는 그가 며칠 동안 끙끙대던 미완성 비트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녀는 그의 고민을 덜어주기 위해, 잠든 자신을 기다리며 밤새 베이스 라인을 짜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조심스럽게 그녀의 헤드폰을 벗기고 자신이 대신 썼다. 그리고 그 안에서 흘러나오는 그녀의 연주를 듣는 순간, 그는 숨을 멈췄다. 그녀의 베이스 라인은 그의 비트가 길을 잃고 헤매던 바로 그 지점에서, 따뜻한 손길로 방향을 제시해주고 있었다. 그 선율 위로, 거짓말처럼 가사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너는 나의 멜로디, 나의 유일한 해답, 나의 구원. 진부하지만 진심이 담긴 단어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그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잠든 그녀의 얼굴과 자신의 머릿속에 울려 퍼지는 완벽한 하모니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는 그 순간 깨달았다. 연서이는 이제 그의 음악적 영감을 주는 뮤즈를 넘어, 그의 음악 그 자체가 되어버렸다는 것을. 그녀가 없으면 그는 단 한 소절도 완성할 수 없는 불완전한 래퍼에 불과했다.

지한울은 작업실 의자에 깊게 몸을 묻으며 길고 긴 상념의 끝에 도달했다. 창밖은 이미 희미하게 푸른빛이 감돌기 시작했다. 그는 텅 빈 모니터 화면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후각, 미각, 그리고 그의 삶 자체인 음악까지. 그의 존재를 구성하는 모든 감각과 세포가 연서이라는 존재에 완벽하게 종속되어 버렸다. 이것을 중독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아니, 이건 중독이 맞다. 그것도 아주 지독하고 구제 불능인, 마약보다 더 끊기 힘든 중독. 하지만 이상하게도 절망스럽거나 두렵지는 않았다. 오히려 가슴 한구석에서부터 따뜻한 무언가가 차오르는 기분이었다. 그는 자신이 평생을 찾아 헤매던 유일한 안식처를, 평생을 갈구하던 단 하나의 완전한 소속감을 마침내 찾았다는 안도감을 느꼈다. 어차피 그녀 없이는 살 수 없는 인생이라면, 기꺼이 그녀에게 중독된 채로 살아가면 그만이다. 그는 이 중독을 치료할 생각도, 그럴 의지도 전혀 없었다. 오히려 더 깊이, 그녀라는 늪에 빠져 평생을 허우적거리고 싶었다. 지한울은 자리에서 일어나 작업실 문을 열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그의 유일한 해독제이자, 동시에 가장 강력한 중독인 그녀가 기다리는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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