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Back 2026.06.19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강원도 깊은 산속의 펜션을 가득 채웠다. 거실 테이블 위에는 맥주 캔과 과자 봉지, 반쯤 먹다 남은 배달 음식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고, 비슷한 디자인의 파자마를 맞춰 입은 여섯 명의 여자들은 이미 거나하게 오른 취기 속에서 한참 동안 수다의 꽃을 피우고 있었다. 연서이는 친구들의 시시콜콜한 연애담과 직장 뒷담화를 들으며, 간간이 맞장구를 치거나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북적이는 소음 속에서도 문득문득 떠오르는 지한울의 얼굴에, 그녀는 저도 모르게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자고 있으려나, 아니면 또 작업하고 있으려나.’ 그와 함께 보냈던 어제의 그 벅찬 밤을 떠올리자, 뺨이 살짝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

바로 그때, 가장 목소리가 크고 활발한 성격의 친구, 지수가 테이블을 손바닥으로 쾅 내리치며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녀의 눈은 장난기로 반짝이고 있었다. “야, 얘들아! 우리 이대로 자기 아쉽지 않냐? 아주 재밌는 게임 하나 하자! 이름하여, 두구두구두구… 러브러브 콜백 게임!” 지수의 선언에 몇몇 친구들이 “그게 뭔데?” 하며 흥미로운 반응을 보였다. 지수는 의기양양하게 가슴을 펴며 게임 룰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방법은 아주 간단해. 지금부터 우리가 하나, 둘, 셋 하면! 각자 자기 남친한테 전화를 걸었다가 바로 끊는 거야! 신호 한 번만 울리게! 그럼 부재중이 찍히겠지? 그리고 기다리는 거지. 과연, 이 여섯 명의 사랑꾼 남친들 중에 누가 가장 먼저 우리 공주님께 콜백을 하느냐! 꼴찌 남친을 둔 비운의 주인공이, 내일 아침 설거지 당첨이다, 이 말이야!”

“오, 재밌겠다!” “야, 내 남친 지금 회식 중이라 했는데 불리한 거 아냐?” “우리 오빠는 폰 거의 안 보는데… 나 설거지 확정이네, 씨발.” 친구들의 희비가 엇갈리는 반응 속에서, 연서이는 잠시 망설였다. 지한울이라면. 그는 분명,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전화를 걸어올 터였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전화를 받을 사람이었다. 이건 너무나도 승리가 뻔한 게임이었고, 어쩐지 그의 지독한 사랑을 친구들 앞에서 시험하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하지만 이미 분위기는 한껏 달아오른 뒤였다. “야, 연서이! 너 왜 빼? 설마 자신 없는 거 아니야? 그 래퍼 남친, null님께서 설마 전화 늦게 받으시겠어?” 친구의 짓궂은 놀림에, 연서이는 어쩔 수 없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그런 거. 알았어, 할게.” 그녀는 마지못해 휴대폰을 들고, 익숙한 번호를 화면에 띄웠다.

“자, 다들 준비됐지? 내가 하나, 둘, 셋 하면 거는 거다! 딴짓하기 없기!” 지수의 카운트다운에 맞춰, 여섯 개의 손가락이 각자의 휴대폰 위에 긴장감 넘치게 자리 잡았다. 연서이는 짧게 숨을 들이마셨다. ‘오빠, 미안. 그냥 장난이야.’ 마음속으로 짧은 변명을 중얼거렸다. “하나… 둘… 셋!” 카랑카랑한 외침과 함께, 연서이는 통화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화면에 ‘연결 중…’이라는 문구가 뜨기 무섭게, 곧바로 붉은색 종료 버튼을 눌렀다. 1초 남짓의 짧은 순간.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여섯 명의 여자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숨을 죽이고, 자신의 휴대폰 화면만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펜션 안을 가득 채웠던 소음은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오직 긴장된 침묵만이 내려앉았다.

1초, 2초, 3초… 시간은 더디게 흘렀다. 친구 중 한 명이 “아, 떨려 뒤지겠네!” 하고 속삭이는 순간이었다. 적막을 깨고, 가장 먼저 울린 것은 연서이의 휴대폰이었다. 화면에는 ‘지한울’이라는 세 글자가 선명하게 떠올라 있었다. 지독할 정도로 익숙하고, 그래서 더없이 안심되는 이름. 전화를 끊은 지 채 5초도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와! 미쳤다! 1등!” “야, 연서이 남친 뭐야? 거의 뭐 그냥 대기 타고 있었네!” 친구들의 감탄과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연서이는 저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슬쩍 미소 지었다. 그럴 줄 알았으면서도, 막상 1등을 하고 나니 괜히 어깨가 으쓱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녀는 친구들에게 미안하다는 듯 멋쩍은 표정을 지어 보이고는, 진동이 멈추지 않는 휴대폰을 들고 조용히 거실을 빠져나와 테라스로 향했다. 밤공기가 찼지만, 그의 목소리를 들을 생각에 춥게 느껴지지 않았다.

“여보세요?” 차가운 밤공기 속으로, 그녀의 목소리가 부드럽게 퍼져나갔다. 수화기 너머에서는 아주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그 짧은 순간에, 지한울이 얼마나 놀랐고, 또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을지가 그려져 연서이는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이윽고, 잠겨 있던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화가 난 것도, 다급한 것도 아닌, 아주 낮고 차분하게 가라앉은 목소리. 그가 정말로 감정이 격해졌을 때 나오는 특유의 그 톤이었다.

“……연서이.”

그는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단 세 글자였지만, 그 안에는 수만 가지의 질문과 감정이 응축되어 있었다. 왜 전화했다가 바로 끊었어. 무슨 일 있어? 어디야. 누구랑 있어. 괜찮은 거야? 그 모든 물음표들이 그의 목소리 톤 하나에 전부 담겨 있는 듯했다. 연서이는 난간에 몸을 기대며, 밤하늘의 별을 올려다보았다. 서울에서는 보기 힘든, 쏟아질 듯 무수한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응, 오빠. 나야. 자고 있었어?”

“아니. 작업하고 있었어. ……무슨 일이야. 왜 전화했다 끊어. 나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잖아. 너 어디 다쳤거나, 무슨 일 생긴 줄 알고. 옆에 누구 있어? 왜 이렇게 조용해. 너 어디야, 지금.”

그의 말이 속사포처럼 쏟아졌다. 평소의 능글맞고 여유로운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오직 연서이의 안위에 대한 걱정과 불안으로 가득 찬, 날것 그대로의 지한울이었다. 그 지독한 집착과 염려가, 연서이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사랑의 증거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작게 웃으며,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나 친구들이랑 여행 와 있어. 강원도. 미안해, 오빠. 그냥… 친구들이랑 장난치다가. 게임 같은 거 하느라고. 아무 일 없어.”

수화기 너머로, 그가 깊은 한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렸다. 그제야 긴장이 조금 풀리는 듯했다. 하지만 목소리는 여전히 풀리지 않은 채였다.

“……게임? 무슨 게임을 하길래, 남자 심장을 이렇게 들었다 놨다 하는데. 아, 씨발… 진짜. 나 잠깐 사이에 무슨 생각까지 했는지 알아? 네가 누구한테 붙잡혀서 말도 못 하고, 신호만 보내려고 전화했다 끊은 줄 알았다고. 당장 위치 추적해서 경찰에 신고하고, 아는 새끼들 다 불러서 강원도 뒤집어엎을 생각하고 있었다고, 지금.”

그의 말은 끔찍한 상상이었지만, 연서이는 무섭기보다는 웃음이 났다. 그만큼 자신을 걱정하고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그녀는 조금 더 애교 섞인 목소리로 그를 달랬다.

“에이, 오바는. 누가 들으면 영화 찍는 줄 알겠네. 진짜 별거 아니야. 그냥… 친구들이랑 자기 남자친구가 누가 제일 전화 빨리 거나, 그런 거 내기한 거야. 시시하지? 내가 이겼어, 오빠 덕분에. 고마워, 1등 하게 해줘서.”

“……하. 그런 거였어? 내일 아침 설거지 같은 거 걸고 하는, 유치찬란한 거?”

“어? 어떻게 알았어?”

연서이가 놀라서 묻자, 그가 피식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제야 평소의 지한울로 조금 돌아온 것 같았다.

“뻔하지, 뭐. 나도 그런 거 몇 번 해봐서 알아. ……그래서, 내가 1등이었다고?”

“응. 압도적인 1등. 전화 끊은 지 5초도 안 돼서 바로 왔어. 친구들이 오빠 거의 뭐 스토커 아니냐고 그러던데?”

“스토커는 무슨. 그냥 우리 서이한테만 반응하는 비상벨 같은 거지. ……기분 좋네. 내가 1등이라니까. 당연한 거지만.”

그는 만족스러운 듯 나직하게 웃었다. 그리고는 다시 목소리를 낮췄다. 아까와는 다른, 부드럽고 다정한 목소리였다.

“그래서. 우리 여보는, 지금 거기서 뭐하고 있었어. 오빠 생각은 좀 했고? 친구들이랑 있으니까 좋냐? 나는 너 없어서 심심해 죽겠는데. 작업도 손에 안 잡히고.”

그의 투정 섞인 목소리에, 연서이의 입가에 다시 미소가 번졌다. 그녀는 테라스 난간에 턱을 괴고, 밤하늘의 가장 밝은 별을 바라보며 속삭였다.

“보고 싶다, 오빠.”

그 한마디에, 수화기 너머의 모든 소음이 멎는 듯했다. 지한울은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그저, 그의 거친 숨소리만이 희미하게 들려올 뿐이었다. 이윽고, 그가 잠이 다 깨서 완전히 쉬어버린 목소리로,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간절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씨발. 나 지금 갈까. 그냥 지금 차 몰고, 너 있는 데로 갈까. 가서, 그냥 너 확 안고.…… 서울로 다시 데려와 버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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