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흐른 어느 날, 늦여름의 열기가 아직 가시지 않은 8월의 오후. 펜트하우스 거실은 에어컨이 뿜어내는 서늘한 공기로 가득했다. 지한울, 즉 ghnull은 며칠 전부터 시작한 사소하지만 대담한 범죄 행위에 푹 빠져 있었다. 범죄의 이름은 ‘연서이 유튜브 프리미엄 계정 강탈’ 이었고, 범행 동기는 지극히 지한울다웠다. 처음에는 단순한 귀찮음에서 시작됐다. 거실에 놓인 대형 스마트 TV로 유튜브를 보려는데, 로그아웃하고 자기 계정으로 다시 로그인하는 과정이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을 만큼 귀찮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냥, 아주 자연스럽게 이미 로그인되어 있던 연서이의 계정을 그대로 사용했다. 한번이 두 번이 되고, 두 번은 곧 습관이 되었다.
하지만 곧 이 행위는 단순한 귀찮음을 넘어선, 새로운 차원의 즐거움으로 변질되었다. 바로 ‘알고리즘 오염시키기’ 프로젝트였다. 평소 연서이의 유튜브 시청 기록은 고양이 영상, 클래식 연주회, 베이킹 브이로그, 잔잔한 인디 음악 플레이리스트 같은 것들로 채워져 있었다. 그야말로 맑고 깨끗한 청정 구역. 지한울은 그 순백의 도화지에 검은 물감을 풀어놓는 악당이 되기로 결심했다. 자신의 취향을 아주 노골적으로, 그리고 꾸준히 전시함으로써 서이의 알고리즘을 자신의 것으로 잠식해 나가는 쾌감은 생각보다 쏠쏠했다. 그는 일부러 시청 기록을 지우지 않았고, 마음에 드는 영상에는 꼬박꼬박 ‘좋아요’를 눌렀으며, 심지어는 ‘ghnull's PICK’이라는 낯부끄러운 이름의 재생목록까지 만들어 차곡차곡 영상을 쌓아두었다.
사건의 발단은 소파에 나란히 누워 각자의 휴대폰을 보던 평화로운 오후에 찾아왔다. 며칠간의 작업으로 꽤나 성공적으로 알고리즘을 오염시켰다고 자부하던 지한울은, 문득 궁금해졌다. 과연 연서이는 이 거대한 변화를 눈치챘을까. 둔한 건지, 아니면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건지. 그는 슬쩍 연서이를 떠봤다.
야, 너는 유튜브 뭐 보냐 요즘?
지한울은 제 휴대폰 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무심하게 물었다. 화면 속에서는 한 남자가 폐가에서 귀신을 찾겠다며 홀로 카메라를 들고 어둠 속을 헤매는 중이었다. 어제 TV로 보다가 잠들어서 이어보던 참이었다. 흘깃 쳐다본 서이는 동그란 눈으로 휴대폰 화면을 들여다보며 무언가를 열심히 검색하는 중인 것 같았다. 그녀의 화면에서 작게 흘러나오는 소리는 분명, 아기 북극곰의 재롱잔치 같은 것이었다. 아직은, 아직은 괜찮은 건가. 지한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다시 화면에 집중하려 했다. 바로 그 순간, 서이의 입에서 예상치 못한 말이 터져 나왔다.
오빠. 혹시 어제 새벽 세 시에 '실패율 0% 제육볶음 황금 레시피' 영상 봤어?
지한울은 저도 모르게 숨을 멈췄다. 제육볶음? 황금 레시피? 분명 어젯밤 작업을 마치고 출출해져서 야식 메뉴를 고민하며 봤던 바로 그 영상이었다. 심지어 ‘나중에 해줄게’ 라는 댓글까지 남길 뻔했던.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 한 방울이 흘러내리는 기분이었다. 그는 애써 태연한 척, 무슨 소리냐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되물었다.
아니? 나 어제 너 자고 바로 잤는데. 왜?
서이는 대답 대신 제 휴대폰 화면을 지한울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화면에는 너무나도 익숙한, 바로 그 제육볶음 영상의 썸네일과 함께 선명한 시청 기록이 떠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로 펼쳐진 광경은, 지한울이 지난 며칠간 공들여 쌓아 올린 범죄의 탑이었다. 변명의 여지가 없는, 명백한 증거였다.
시청 기록
[ENG SUB] 전설의 페라리 F40, 대체 왜 명차인가? 30년 만의 시승기
카잘알 TV • 조회수 231만회
■ 시청자: ghnull (오늘)
역대 최악의 번역 TOP 10 (어벤져스부터 겨울왕국까지)
영화읽는괴물 • 조회수 402만회
■ 시청자: ghnull (어제)
실패율 0% 제육볶음 황금레시피 (feat. 우리 할머니 손맛)
집밥최선생 • 조회수 108만회
■ 시청자: ghnull (어제)
ASMR | 바삭한 통닭다리 튀김 먹방 리얼사운드 NO TALKING MUKBANG
ASMR Suna 꿀꿀선아 • 조회수 879만회
■ 시청자: 연서이 (3일 전)
지한울은 화면을 보자마자 아, 좆됐다, 하는 심정으로 두 손에 얼굴을 묻었다. 딱 걸렸다. 너무나도 명백하게. 심지어 서이는 친절하게도 각 영상의 시청자를 구분해 놓기까지 했다. 자신의 이름 옆에 붙은 붉은색 네모와 서이의 이름 옆에 붙은 푸른색 네모가 마치 범죄자와 피해자를 나누는 낙인처럼 보였다. 고개를 들자 서이가 묘한 표정으로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화가 난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마냥 웃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순수한 궁금증과 약간의 황당함이 뒤섞인, 뭐라 설명하기 힘든 얼굴이었다.
아아아⋯⋯. 죽고 싶어어. 진짜 미안해⋯⋯.
지한울은 제 머리를 쥐어뜯으며 소파 위를 뒹굴었다. 전형적인, 그의 사과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미안함보다는 쪽팔림이 훨씬 컸기 때문이다. 그는 끙,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켜 앉아 서이의 눈치를 살폈다. 그리고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하지만 뻔뻔함은 잃지 않은 채 변명을 시작했다.
그게⋯⋯. 네 알고리즘이 너무, 뭐랄까. 청정해. 너무 하얘서 내가 좀, 색칠 좀 해주고 싶었어. 넌 맨날 고양이랑 강아지 이런 것만 보잖아. 세상에는 더 재밌는 게 많다고, 서이야. 이를테면, 전설의 명차 시승기라든가, 영화 번역이 얼마나 좆같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심도 깊은 고찰이라든가⋯⋯.
지한울은 말끝을 흐리며 서이의 반응을 살폈다. 서이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움찔거리는 것을 포착한 그는, 이때다 싶어 더욱 당당하게 목소리를 높였다. 적반하장, 그것이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지름길임을 그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네 계정으로 보는 게 편해. TV에 딱 로그인되어 있잖아. 광고도 안 나오고. 내 계정은⋯⋯. 비밀번호가 뭐였더라. 아무튼, 이건 다 우리 사이가 그만큼 가깝다는 증거 아니겠어? 내 것 네 것 따지는 삭막한 사이가 아니라는 거지. 공유경제, 뭐 그런 거 있잖아. 안 그래?
MEMO
- 서이 유튜브 계정으로 '사나이 울리는 신라면 맛있게 끓이는 법' 시청함.
- 'ghnull's PICK' 재생목록에 '힙합 역사 10분 요약' 추가.
- 서이의 '귀여운 동물' 재생목록에 '세상에서 가장 큰 뱀 TOP5' 몰래 추가함. 걸리면 죽겠지?
- 어차피 걸린 거, 이제 대놓고 써야겠다. 합의 보자고 해야지.
- 오늘 저녁은 제육볶음이다. 내가 직접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