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 2026.07.14

달칵, 하고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거실의 정적을 깨뜨렸다.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휴대폰으로 팬들의 반응이나 훑어보던 지한울의 시선이 소리가 난 쪽으로 무심하게 향했다. 어, 벌써 나가나. 그는 딱 그 정도의 생각을 하며 다시 액정 위로 눈을 돌렸다. 늘 그렇듯 가볍게 손을 흔들어주거나, 다녀와, 하고 말하는 것으로 배웅을 대신할 생각이었다. 그것이 두 사람 사이에 굳어진, 익숙하고 편안한 일상의 한 조각이었으니까. 언제부터였더라. 연서이는 집을 나설 때마다 꼭 그의 뺨에 입을 맞추거나, 혹은 멀리 떨어져 있을 경우엔 큰 소리로 사랑한다고 외치고는 했다. 처음에는 그게 낯간지럽고 어색해서, 그는 매번 ‘어어, 알아, 나도’ 하는 식으로 퉁명스럽게 답하곤 했다. 하지만 그 퉁명스러움 아래로 지독한 안도감이 스몄다는 것을 그는 부정할 수 없었다. 마치 매일 아침 떠오르는 해를 확인하듯, 그는 그녀의 사랑 고백을 통해 비로소 자신의 하루가 안전하게 시작된다는 것을 무의식중에 확인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오늘은 무언가 달랐다. ‘다녀올게~’ 하는 명랑한 목소리 뒤로, 당연히 따라붙어야 할 세 글자가 들리지 않았다. 그 짧은 부재를 지한울의 뇌가 인지하는 데에는 채 1초도 걸리지 않았다. 그는 휴대폰 화면에 시선을 고정한 채 미동도 하지 않았지만, 그의 모든 신경은 이미 닫힌 현관문 너머로 날카롭게 뻗어 나가고 있었다. 뭐지. 까먹었나? 아니, 이걸 까먹을 수가 있나. 그는 스스로에게 반문하며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별일 아닐 거라고, 그냥 바빠서, 혹은 정신이 없어서 그랬을 거라고 이성적인 뇌가 속삭였지만, 가슴 한구석에서는 이미 차갑고 끈적한 불안이 뱀처럼 스멀스멀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어쩌면 그 의식은 그에게만 중요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연서이에게는 그저 수많은 일상 중 하나, 가끔은 잊어버릴 수도 있는 사소한 습관 같은 것이었을지도.

그 생각이 들자마자, 지한울은 들고 있던 휴대폰 화면을 꺼버리고 소파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씨발, 기분 좆같네. 그는 낮게 욕설을 읊조리며 거실을 무의미하게 서성거렸다. 바닥을 밟는 맨발의 감촉이 유난히 차갑게 느껴졌다. 단순히 사랑한다는 말을 듣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그것은 그와 그녀의 세계를 지탱하던 아주 작은 균형추 하나가 예고 없이 사라진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그가 그녀의 사랑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연서이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머리로는. 하지만 그의 빌어먹을 과거는 늘 머리가 아닌 몸으로 모든 것을 기억하고 증명받기를 원했다. ‘사랑해’라는 말은 단순한 고백이 아니라, ‘나는 오늘도 네 곁에 있다, 나는 너를 떠나지 않는다’는 약속이자 그의 존재를 확인시켜주는 유일한 주문이었다.

그는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쓸어 올리며 현관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당장이라도 문을 열고 그녀를 붙잡아 세워 따지고 싶은 충동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왜 말 안 했어. 나 이제 안 사랑해? 그깟 말 한마디 해주는 게 그렇게 어려워? 유치하고 찌질한 말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하지만 그는 가까스로 현관문 손잡이를 잡으려던 손을 멈췄다. 연서이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만약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실수로 그런 것이라면. 자신이 이렇게 정색하고 달려나가 그녀를 추궁했을 때, 그녀가 어떤 표정을 지을지 너무나 선명하게 그려졌다. 당황하고, 미안해하고, 그리고 아마도 조금은 지친 표정을 하겠지. 또 시작이구나, 하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 상상만으로도 심장이 서늘하게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그는 그녀를 그런 식으로 지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결국 그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차가운 현관문에 이마를 기댄 채 가만히 서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내려가는 소리, 이웃집에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아이의 웃음소리. 일상의 소음들이 그의 귓가를 스쳐 지나갔지만, 그 무엇도 그의 안에서 요동치는 불안을 잠재우지는 못했다. 그는 눈을 감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괜찮아, 병신아. 별일 아니야. 그냥 바빴던 거야. 그는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한번 고개를 든 의심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어쩌면 이것은 아주 작은 신호일지도 모른다.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어가는 과정의 첫 단계. 그녀의 세상에서 그의 존재가 조금씩 희미해지고 있다는 증거. 그는 고개를 저으며 그 끔찍한 생각들을 떨쳐내려 애썼다. 아니야, 그럴 리 없어. 연서이는 그럴 애가 아니야.

지한울은 한참 동안이나 그 자리에 서서 닫힌 문을 노려보았다. 그리고는 마른세수를 한번 하고, 몸을 돌려 다시 소파로 향했다. 그는 소파에 털썩 주저앉아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담뱃갑으로 손을 뻗었다.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고 불을 붙이려던 순간, 그는 문득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연서이와의 채팅창을 열었다. 무어라 보내야 할지 잠시 고민하던 그의 손가락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추궁이나 원망 대신, 그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불안을 확인하기로 결심했다. 그의 자존심이 허락하는, 가장 그 다운 방식이었다. 그는 방금 연서이가 나간 현관문 사진을 찍어 보낼까 하다가, 그것조차 너무 속 보이는 짓 같아서 관뒀다. 대신 그는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평소와 같은 어조로 문자를 보냈다. 하지만 그 짧은 문장 안에는, 확인받지 못한 사랑에 대한 그의 모든 갈증과 불안이 담겨 있었다.

근데 너 오늘따라 유독 더 예쁜 거 같냐

그는 전송 버튼을 누르고,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껐다. 이제 남은 것은 그녀의 답장을 기다리는 일뿐이었다. 아마 그녀는 이 문자가 무슨 의미인지 전혀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그저 갑작스러운 칭찬에 웃으며 고맙다고 답장하거나, 웬 주접이냐며 타박할지도 모른다. 어떤 답이 오든 상관없었다. 그는 그저 그녀의 답장을 통해, 그녀가 여전히 자신과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느끼고 싶었을 뿐이다. 그녀의 일상에 자신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아주 작은 증거. 그것만이 지금 그가 매달릴 수 있는 유일한 동아줄이었다. 그는 답장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초조하게 휴대폰 화면만 새로고침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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