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푸른빛이 창문을 넘어와 방 안을 희미하게 밝히고 있었다. 지한울은 어젯밤 늦게까지 이어진 작업의 여파로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세상의 모든 소음이 차단된 고요한 공간, 그의 의식은 무중력 상태처럼 부유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정적을 깨뜨리는 날카로운 노크 소리가 방문을 두드렸다. 똑, 똑. 간결하지만 집요한 소리였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잠결에 뒤척였다. 씨발, 어떤 새끼야. 이 새벽부터. 매니저인가? 그는 무거운 눈꺼풀을 억지로 들어 올리며 침대에서 상체를 일으켰다. 머리카락은 까치집처럼 엉망이었고, 잠에 취한 잿빛 눈동자는 초점이 흐릿했다. 그는 느릿하게 침대에서 내려와 어기적거리며 현관문이 아닌, 작업실 방문으로 향했다. 똑, 똑. 노크 소리가 다시 한번 들려왔다. 이번에는 조금 더 다급한 기색이 섞여 있었다.

지한울은 잠이 덜 깬 목소리로 짜증스럽게 중얼거리며 문고리를 잡았다. 아, 누구냐고 진짜. 그는 별생각 없이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 순간, 그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남아있던 모든 잠기운이 산산조각 나며 흩어졌다. 문 앞에는 연서이가 서 있었다. 평소의 단정하고 차분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그녀는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 위태롭게 서 있었다. 눈가는 붉게 충혈되어 있었고, 하얀 뺨 위로는 이미 몇 번이고 닦아낸 듯한 눈물 자국이 선명했다. 그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그녀의 커다란 눈에서 기어코 참아왔던 눈물방울이 후드득 떨어져 내렸다. 지한울의 심장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감각이 들었다. 세상의 모든 소리가 멀어지고, 그의 시야에는 오직 울고 있는 연서이의 모습만이 가득 찼다. 무슨 일이야. 그가 입을 열기도 전에, 연서이가 와락 그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그녀의 가녀린 몸이 그의 가슴에 부딪히는 충격과 함께, 억눌린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지한울은 반사적으로 그녀를 끌어안았다. 그의 팔이 그녀의 등을 단단히 감싸 안았고, 그의 커다란 손바닥이 그녀의 떨리는 어깨를 감쌌다. 그의 품에 얼굴을 묻은 채 서럽게 우는 그녀의 모습에, 그의 머릿속은 새하얗게 변했다. 온갖 끔찍한 상상들이 그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누가, 누가 이 여자를 울렸어. 어떤 개새끼가. 그의 안에서 차가운 분노가 들끓기 시작했다. 그는 그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어떻게든 그녀를 진정시키려 애썼다. 그의 심장은 미친 듯이 방망이질 치고 있었지만, 목소리는 최대한 차분하게 유지하려 노력했다. 그가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 망설이는 사이, 그의 티셔츠를 축축하게 적시며 울던 연서이가 겨우 입을 열었다.

오빠⋯⋯ 오빠가, 사라지는 꿈 꿨어⋯⋯.

그 한마디에, 지한울의 세상은 잠시 숨을 멈췄다. 그의 머리를 잠식했던 모든 분노와 끔찍한 상상들이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그 자리에 서늘한 공포가 들어찼다. 꿈. 그저 꿈이라는 사실에 안도해야 마땅했지만, 그는 그럴 수 없었다. 연서이의 악몽은 곧 그의 현실이었다. 그가 평생을 두려워하며 살아온 것. 사랑하는 모든 것에게서 버림받고, 세상에 홀로 남겨지는 것. 그 지독한 불안이 그녀의 입을 통해 악몽이라는 형태로 발현된 것이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그녀를 끌어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마치 이대로 놓으면 정말 그녀의 꿈처럼 자신이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았다. 그는 그녀의 귓가에 다급하게 속삭였다. 그의 목소리는 그 자신도 놀랄 만큼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서이야. 서이야, 나 여기 있어. 괜찮아. 나 여기 있잖아. 응? 봐봐. 나 좀 봐봐. 나 안 사라져. 어디 안 가. 씨발, 절대 안 가. 너 두고 내가 어딜 가.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그냥 꿈이야. 알았지? 개꿈이라고, 씨발. 존나 재수 없는 개꿈. 내가 여기 이렇게 있는데, 왜 울어. 응? 울지 마. 네가 울면 나 진짜 죽을 것 같아.

그는 연서이의 어깨를 붙잡고 그녀를 품에서 살짝 떼어냈다. 그리고 그녀의 젖은 얼굴을 두 손으로 감쌌다. 붉어진 눈가, 눈물로 젖은 속눈썹, 하얗게 질린 입술. 그녀의 모든 고통이 고스란히 그의 심장으로 흘러 들어왔다. 그는 엄지손가락으로 그녀의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부드럽게 닦아주었다. 그의 눈에는 그녀를 향한 안타까움과, 그녀를 이렇게 만든 정체 모를 악몽에 대한 분노,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뛰어넘는 절박한 사랑이 뒤엉켜 있었다. 그는 그녀의 이마에, 젖은 눈꺼풀에, 콧등에, 그리고 뺨에 연달아 입을 맞췄다. 마치 자신의 입맞춤으로 그녀의 악몽을 지워낼 수 있기라도 한 것처럼. 그는 이 작은 몸이 감당했을 공포와 슬픔의 깊이를 감히 짐작할 수도 없었다.

아, 진짜⋯⋯ 얼마나 무서웠어. 얼마나 놀랐어. 괜찮아, 이제 괜찮아. 내가 여기 있잖아. 네 옆에. 평생 여기 있을 거야. 죽을 때까지 네 옆에 딱 붙어 있을 거야. 그러니까 그런 꿈 꿨다고 무서워하지 마. 꿈은 반대래잖아. 내가 너한테 더 존나게 붙어 있을 거라는 신의 계시 같은 거야. 씨발,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데. 어떻게 널 두고 사라져. 그건 내가 죽는 거야. 너 없는 세상은 나한테 지옥이야. 알잖아. 응?

그는 연서이를 다시 품에 끌어안고, 그녀를 안은 채 뒷걸음질 쳐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문을 발로 툭 차서 닫고, 그대로 그녀를 안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는 자신의 무릎 위에 연서이를 마주 보게 앉히고, 그녀의 등을 토닥였다. 마치 어린아이를 달래는 듯한 조심스럽고 다정한 손길이었다. 그는 그녀의 떨림이 잦아들 때까지 아무 말 없이 그녀를 안고 있었다. 창밖이 점점 더 밝아오며 아침의 기운이 완연해졌다. 그는 자신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안정을 찾아가는 연서이의 체온을 느끼며, 비로소 세차게 뛰던 자신의 심장이 조금씩 진정되는 것을 느꼈다. 그는 연서이의 머리칼에 뺨을 부비며 나직하게 속삭였다. 그의 목소리에는 깊은 안도감과 지독한 소유욕이 짙게 배어 있었다.

다시는 그런 꿈 못 꾸게 할게. 내가 매일 밤 옆에서 지켜줄게. 네가 잠들 때도, 네가 꿈을 꿀 때도, 내가 항상 네 옆에 있을게. 그러니까 불안해하지 마. 알았지, 서이야? 나는 네 거야. 처음부터 그랬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 사실은 절대 안 변해. 이 세상이 전부 뒤집어져도, 그것만은 안 변해. 약속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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