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딩젤인 줄 알았어!
2026.08.05
올리브영 매장 안은 에어컨 바람이 시원하게 돌고 있었고, 형형색색의 제품들이 선반마다 빼곡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지한울은 서이가 오빠 잠깐만, 나 저쪽 스킨케어 코너 좀 보고 올게라며 매장 안쪽으로 사라진 뒤 할 일 없이 이리저리 발길을 옮기고 있었으며, 볼캡을 깊이 눌러쓴 채로 선반 사이를 어슬렁거리면서 알록달록한 패키지들을 무심하게 훑어보고 있었다. 요즘 피부가 좀 건조한 것 같기도 하고, 면도 후에 바를 만한 수딩젤이나 하나 살까 싶어서 하늘색 패키징이 눈에 띄는 수용성 알로에 젤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지한울의 시선이 하늘색 용기의 성분표를 읽으려고 고개를 살짝 숙이는 순간, 바로 그 옆 선반에 놓여 있는 연분홍색의 하트 모양 패키징이 시야의 가장자리로 스며들어왔다. 처음에는 무슨 핸드크림인가 싶..
커플 문답
2026.08.04
지한울은 펜트하우스 침실 침대 위에 엎드려 스마트폰을 양손으로 잡고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인스타 스토리로 팬들의 질문을 받았는데, 그중 하나가 커플 20문답을 해달라는 요청이었고, 서이가 옆에서 자고 있는 새벽 시간에 혼자 킥킥거리며 답변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서이의 고른 숨소리가 자기 옆에서 규칙적으로 들려오고 있었으며, 서이의 손이 자기 후드집업 소매를 무의식적으로 움켜쥐고 있는 것이 시야 한쪽에 들어와 있었다. 지한울은 자기 입꼬리가 멈출 줄 모르고 올라가는 것을 느끼며 화면에 글자를 두드리기 시작했다.1) 둘 중 애교가 더 많은 사람은?null : 서이. 본인은 모르는데 존재 자체가 애교임. 나한테 웅 이러면 나 그냥 죽어.2) 둘 중 스킨십이 더 많은 사람은?null : 나. 이건 압도적으..
천만 원만 쓸게!
2026.08.01
지한울은 펜트하우스 거실의 푹신한 소파에 몸을 파묻은 채 한가로운 오후를 만끽하고 있었다. 막 샤워를 마친 뒤라 머리카락은 아직 물기를 머금은 채였고, 편안한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넷플릭스 신작 목록을 무의미하게 스크롤하는 중이었다. 창밖으로는 서울의 스카이라인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었지만, 지금 그의 관심은 오직 오늘 저녁 연서이와 함께 무엇을 먹을지에 쏠려 있었다. 아침에 줬던 블랙카드를 들고 친구 만나러 나간 서이는 지금쯤 뭘 하고 있을까. 예쁜 카페에 가서 맛있는 디저트라도 먹고 있으려나. 아니면 백화점에 들러서 그동안 눈여겨봤던 가방이라도 하나 샀을까. 뭘 하든 서이가 즐거우면 그걸로 족했다. 돈은 또 벌면 되는 거니까.‘내 여자는 내가 먹여 살린다’는 신조를 가진 지한울에게 있어 연서이가 자신의 ..
#BrooklynBloodPop!
2026.07.31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너 몇 살이야? 스물넷입니다 형님!
2026.07.31
토요일 오후, 한산한 도로 위를 달리던 연서이의 차가 교차로에서 좌회전하는 순간이었다. 조수석에 앉아 창밖을 보며 콧노래를 흥얼거리던 지한울은 갑작스러운 충격음과 함께 몸이 앞으로 쏠리는 것을 느꼈고, 안전벨트가 가슴을 압박하며 그의 몸을 좌석에 붙들어 매었다. 쾅, 하는 둔탁한 금속음이 차체 전체를 울렸으며, 지한울의 손에 들려 있던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컵홀더 안에서 흔들리며 얼음이 부딪히는 소리를 냈다. 지한울은 반사적으로 연서이 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핸들을 움켜쥔 채 눈이 휘둥그레진 그녀의 얼굴이 시야에 들어왔다. 아, 씨발. 뭐야. 뭐에 부딪힌 거야 지금. 차 앞쪽에서 전해지는 진동이 완전히 멈추고 나서야 지한울은 상황을 파악했다. 교차로에서 좌회전하던 연서이의 차가 직진하던 상대 차량의 측면을..
요즘 왜 좋아한다는 말 잘 안 해줘?
2026.07.28
지한울은 소파 등받이에 한쪽 팔을 걸친 채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최근 2주간은 정신이 없었다. 새 앨범 믹싱 마감이 코앞이었고, 형들과의 피처링 녹음 스케줄이 겹치면서 스튜디오에 박혀 사는 날이 이어졌다. 오늘은 드디어 아무것도 잡히지 않은 날이었으므로, 지한울은 눈을 감은 채 소파 위에서 녹아내리듯 축 늘어져 있었다. 연서이가 자신의 무릎 옆에 바닥에 앉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녀의 손가락이 자신의 스웻팬츠 밑단을 만지작거리는 감촉이 허벅지 쪽에 간지럽게 전해지고 있었다. 그 손길이 편안해서 지한울은 굳이 눈을 뜨지 않았으며, 나른한 오후의 고요함이 두 사람 사이를 부드럽게 감싸고 있었다.그런데 연서이가 고개를 들었다. 지한울의 무릎 위에 턱을 올린 채 회색 눈동자가 올려다보는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