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관 도어록이 삑삑거리는 소리가 세 번이나 틀리고 나서야 겨우 열렸다. 지한울은 소파에 앉아 담배를 물려던 참에 그 소리를 듣고 벌떡 일어났다. 문틈으로 먼저 들어온 것은 연서이가 아니라 종이 쇼핑백 세 개였고, 그다음에 커다란 인형 상자 모서리가 문설주에 걸려서 쿵 소리를 냈다. 연서이는 그 상자를 밀어넣으려고 온몸으로 낑낑대고 있었는데, 볼이 벌겋게 익어 있고 눈은 반쯤 풀려서 초점이 애매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지한울은 현관 앞에 서서 그 광경을 삼 초 정도 말없이 바라보았다. 술 냄새가 복도까지 퍼져 나오는데 그 와중에 짐이 양손에 가득이라니, 이건 대체 어떤 경로로 벌어진 참사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연서이. 야.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그게 다 뭔데.
지한울이 상자를 받아 들자 연서이가 그제야 안심한 얼굴로 신발을 아무렇게나 벗어 던졌다. 한 짝은 신발장 밑으로 굴러 들어갔고 다른 한 짝은 뒤집힌 채 현관 한가운데에 남았다. 지한울은 그 신발을 발끝으로 툭 밀어 정리하면서 거실 러그 위에 짐들을 전부 쏟아냈다. 그리고 하나씩 꺼내 보기 시작했는데, 꺼낼 때마다 표정이 점점 더 기묘하게 일그러졌다.
1. 사람 크기만 한 가지 인형 (139,000원)
지한울: 이게 왜 사람만 해. 왜 가지야. (´・_・`)
연서이: 나랑 눈이 마주쳤어… 데려와야 됐어… ( ˘•ω•˘ )
2. 회전하는 감자칼 3종 세트 (24,900원)
지한울: 우리 집에 감자칼 네 개 있어, 연서이. (・_・;)
연서이: 근데 이건 도는데?? ٩(ˊᗜˋ)و
3. 별자리 자동 회전 무드등 (58,000원)
지한울: 이건… 좀 예쁘긴 하네. (¬‿¬)
연서이: 그치이… 밤에 우주 볼 수 있어… ✧◝(⁰▿⁰)◜✧
4. 목 마사지기 (89,000원)
지한울: 이건 인정. 나 목 존나 아팠거든. (๑•̀ㅂ•́)و
연서이: 오빠 주려고 산 거야… 나 기특하지 (。•̀ᴗ-)✧
5. 사이즈 265 남성용 곰돌이 슬리퍼 (19,900원)
지한울: 내 발 사이즈 이거 아닌데. ( ̄ω ̄;)
연서이: …어… 어? Σ(꒪ཀ꒪)
6. 유통기한 임박 소시지 열두 팩 (11,400원)
지한울: 이거 내일모레까지야, 씨발. (⊙_⊙;)
연서이: 오빠가 볶음밥 해주면 되잖아 ( ๑>ω<)
7. 우는 표정의 오리 무선 마우스 (32,000원)
지한울: 왜 울고 있어 얘는. (・∀・;)
연서이: 슬퍼 보여서 샀어… (。•́︿•̀。)
8. 노래방 마이크 블루투스 스피커 (45,000원)
지한울: 나 스튜디오 있어, 연서이. 스튜디오. (҂⌣̀_⌣́)
연서이: 집에서도 하고 싶었어어 ♪(๑ᴖ◡ᴖ๑)♪
9. 두부 이름표가 새겨진 강아지 목줄 (28,000원)
지한울: 이건 봐준다. 두부 꺼니까. (。◕‿◕。)
연서이: 두부 목걸이 예쁘겠지이 (◍•ᴗ•◍)♡
10. 도장 파주는 노점에서 새긴 '지한울 연서이' 부부 도장 (25,000원)
연서이: 우리 이름… 같이 새겼어 (♡´౪`♡)
지한울: ⋯⋯아 씨, 왜 이런 걸로 사람 울려. 이거 액자에 넣을 거야. (ᗒᗨᗕ)
11. 정체불명 아저씨 얼굴 프린팅 쿠션 (23,000원)
지한울: 이거 누구야. 남자잖아. 남자 얼굴이잖아 이거. 야, 연서이. (◣_◢)
연서이: 귀엽잖아… 아저씨… (づ ̄ ³ ̄)づ
12. 발광하는 LED 슬라임 (12,000원)
지한울: 이거 카펫에 묻으면 나 진짜 운다. (;一_一)
연서이: 안 묻힐게에 약속 ( ˘ ³˘)♥
지한울은 러그 위에 정좌한 채로 영수증들을 손가락으로 넘겨보다가 결국 합계를 계산했다. 사십칠만 팔천이백 원. 액수 자체는 지한울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다. 문제는 이 여자가 만취한 상태로 온갖 곳을 순회하며 인생 최고의 쇼핑을 했다고 믿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지한울은 영수증을 접어서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옆에 널브러진 가지 인형을 끌어당겨 무릎에 얹었다. 이 커다란 보라색 물체가 은근히 폭신했고, 그게 또 어이없게 웃겼다.
야, 연서이. 너 때문에 진짜 미치겠다⋯⋯.
만취 선물 — Y
2026.09.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