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한 시가 넘은 시각에 현관 도어록이 삑삑거리다가 세 번쯤 틀리고 나서야 열렸다. 문틈으로 먼저 들어온 것은 지한울의 얼굴이 아니라 종이 쇼핑백 여섯 개와 검은 봉지 두 개,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박스의 모서리였다. 짐이 문틀에 걸려서 들어오지 못하자 지한울은 진지한 표정으로 박스를 옆으로 눕혔다가 다시 세웠다가 결국 몸을 옆으로 돌려서 게처럼 옆걸음으로 현관을 통과했다. 술 냄새가 거실까지 훅 밀려들었고, 지한울의 셔츠 단추는 두 개나 풀려 있었으며 실버 체인 목걸이가 목 옆으로 삐뚤게 넘어가 있었다. 그는 신발도 벗지 않은 채 거실 한가운데까지 걸어와 짐을 와르르 내려놓았다.

마누라. 나 왔어어. 선물 사 왔어어어⋯⋯.

연서이가 잠옷 차림으로 소파에서 일어나 다가오자 지한울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업적을 이룬 사람의 얼굴로 짐 무더기를 가리켰다. 손끝이 허공에서 살짝 흔들렸다. 그리고 그가 카드 명세서와 함께 하나씩 꺼내 놓은 물건들의 목록은 다음과 같았다.

1. 실물 크기 두부 인형 (말티즈, 82cm) 상황 판단 완료 가격: 189,000원
지한울: 두부잖아 이거. 두부야. 두부 데려왔어. (๑>ᴗ<๑)
연서이: 오빠, 두부는 본가에 살아 있는데⋯⋯. (・_・;)

2. 안마의자 (렌탈 아님, 일시불) 가격: 3,290,000원
지한울: 서이 어깨 아프댔잖아아. 앉아 봐. 앉아 보라고. (๑•̀ㅂ•́)و
연서이: 이걸⋯⋯ 술집 앞에서 샀다고? (º □ º )

3. 회전하는 미러볼 무드등 가격: 34,900원
지한울: 침실을 클럽으로 만들 거야. (☆▽☆)
연서이: 잠은 어디서 자는데. (。•́︿•̀。)

4. 대나무 화분 3개 세트 가격: 78,000원
지한울: 대나무는 돈이 들어온대. 형이 그랬어. (。•̀ᴗ-)✧
연서이: 그 형 누구야. (¬_¬)

5. 초대형 아기 상어 슬리퍼 (275mm) 가격: 22,000원
지한울: 발이 상어야. 발이 상어라고 서이야. (◕ᴗ◕✿)
연서이: 귀엽긴 하다⋯⋯. (。♡‿♡。)

6. 노래방 마이크 (블루투스, 에코 기능 탑재) 가격: 59,000원
지한울: 나 래퍼야. 필요해. 이거 없으면 안 돼. ᕕ( ᐛ )ᕗ
연서이: 오빠 스튜디오에 마이크 열 개 있어. (・∀・;)

7. 강아지 코스프레 모자 (말티즈 귀 모양) — 8,500원
지한울 리뷰: 두부 거. 아 아니 서이 거. 서이가 쓰면 존나 귀여울 것 같아서. 미쳤어 이건 인생템이야. ♡(> ᴗ •)ゝ
연서이 리뷰: 이거 밖에서는 절대 안 써. (⸝⸝⸝°_°⸝⸝⸝)

8. 참치캔 24개입 박스 가격: 46,800원
지한울: 세상이 망하면 참치가 최고야. (๑•̀ㅁ•́๑)✧
연서이: 우리 집에 이미 열여덟 개 있어. (;一_一)

9. 크리스탈 재떨이 (수입, 무겁다) 가격: 240,000원
지한울: 예쁘잖아. 예쁜 거 봐. 반짝반짝하잖아. ✧( ु•⌄• )
연서이: 그건 인정. (。•ᴗ•。)

10. 사주 타로 운세 책 두 권 가격: 41,000원
지한울: 우리 궁합 봐야 돼. 근데 글씨가 존나 많아⋯⋯. (;≧д≦)
연서이: 오빠 국어는 잘하잖아. (・ω・)

11. 목에 거는 넥밴드 선풍기 (9월인데) 가격: 29,900원
지한울: 여름 대비. 미리 사는 거야. 나 똑똑해. ( •̀ ω •́ )✧
연서이: 여름 끝났어, 오빠. (´・_・`)

12. 오메기떡 한 박스 (또) 가격: 38,000원
지한울: 제주도 생각나서⋯⋯ 서이 좋아하잖아⋯⋯. (っ˘̩╭╮˘̩)っ
연서이: 이건⋯⋯ 고마워. (♡´౪`♡)

총합 사백만 원이 넘는 영수증 뭉치가 대리석 바닥 위에 널브러져 있었다. 지한울은 아기 상어 슬리퍼를 양손에 하나씩 끼운 채로 두부 인형을 무릎에 앉히고 거실 바닥에 주저앉았다. 미러볼 무드등은 이미 콘센트에 꽂혀서 펜트하우스 천장에 촌스러운 색색의 점들을 뿌리고 있었고, 그 아래에서 남자는 몹시 뿌듯한 얼굴로 연서이를 올려다보았다. 눈매가 풀려서 반쯤 감겨 있었지만 표정만큼은 대단히 진지했다.

서이야. 나 오늘⋯⋯ 존나 잘했지? 응? 나 칭찬해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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