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ady Whistledown’s
SOCIETY PAPERS
Tuesday, April 5, 1814
EXTRAORDINARY PEOPLE. EXTRAORDINARY NEWS.
친애하는 독자 여러분. 겨울의 서리가 채 녹기도 전에 런던의 응접실마다 창문이 열리고, 어머니들의 부채질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교철이 돌아왔지요. 그리고 올해의 첫 소식지는 여러분께서 가장 궁금해하실 그 이름으로 시작하려 합니다. 필자는 인심이 후한 편이거든요.
지(池) 백작가. 이 세 글자를 듣고 손부채를 펼치지 않은 부인이 이 도시에 단 한 분이라도 계신다면, 필자는 기꺼이 그분의 청력을 걱정해 드리겠습니다. 선대 백작께서 남기신 것이라고는 카드 테이블 위의 빚 문서와 시골 영지의 무너진 담장뿐이었으나, 스물넷의 젊은 백작 지한울 경께서는 불과 오 년 만에 그 폐허 위에 대리석을 쌓아 올리셨습니다. 방법이요? 무역선과 인도산 직물, 그리고 도무지 예의라고는 배운 적 없어 보이는 담판 솜씨였다지요. 상류층은 그의 돈을 경멸하면서도 그의 만찬 초대장은 결코 거절하지 않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위선입니다.
그리하여 사월 둘째 주, 프레스콧 후작 저택의 개막 무도회에서 벌어진 광경을 필자는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열일곱 명의 영애들이 백작의 동선을 따라 물결처럼 움직였고, 그중 세 분은 서로의 드레스 자락을 밟았으며, 한 분은 실신하셨습니다. 아, 오해는 마시지요. 그 영애께서는 백작이 계신 방향으로 정확히 쓰러지셨으니까요. 연출이 조금 더 자연스러웠다면 필자도 속아 넘어갔을 텐데, 애석한 일입니다.
정작 백작께서는 어떠셨느냐고요? 그분은 발코니 난간에 팔을 걸치고 시가를 태우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합니다. 결혼은 한 번 하는 거고, 나는 상대를 정해 놨다. 이 한마디에 그날 밤 런던의 어머니들 절반이 편두통을 얻으셨고, 나머지 절반은 백작께서 허풍을 떠는 것이라 믿기로 하셨습니다. 필자는 후자 쪽에 동전을 걸지 않겠습니다. 그분의 왼손 약지에서 반짝이던 것이 무엇인지, 필자의 눈은 아직 밝거든요.
그리고 이제 여러분께서 진정 궁금해하실 이름을 꺼내겠습니다. 연서이 양. 몰락한 남작가의 여식이며, 다이아몬드로 지목되기는커녕 여왕 폐하 앞에 나설 드레스조차 빌려 입으셨다는 소문이 도는 분이지요. 그러나 이 아가씨에게는 런던의 그 어떤 영애도 갖지 못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손가락이지요. 첼로와 비올라 다 감바를 다루는 그 손 말입니다. 사월 열아흐레, 자선 음악회에서 연 양이 활을 들었을 때 객석의 소음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사실을 필자는 목격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백작께서 어떤 표정을 지으셨는지도요.
사월의 마지막 주, 하이드 파크의 산책로에서 두 분이 나란히 걸으시는 모습이 세 차례 목격되었습니다. 세 차례입니다, 독자 여러분. 우연이라 부르기에는 너무 부지런하고, 연애라 부르기에는 아직 아무도 파혼당하지 않았지요. 백작께서는 연 양의 장갑 낀 손을 붙잡고 놓아 주지 않으셨고, 지나가던 자작 영식이 연 양께 인사를 건네자 백작의 턱선이 대리석처럼 굳었다는 증언도 있습니다. 소유욕이라는 것은 참으로 값싼 감정입니다만, 저 정도 규모가 되면 하나의 볼거리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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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dy Whistledown’s Society Papers · Tuesday, April 5, 1814
친애하는 독자 여러분, 필자는 오늘 여러분께 한 가지 충고를 드리고자 합니다. 저 사내에게 판돈을 거시려거든 부디 잃어도 좋을 액수만 거십시오. 사교계에는 두 종류의 사내가 있습니다. 계절이 끝나면 잊히는 사내와, 계절 자체를 자기 이름으로 바꿔 놓는 사내지요. 지 백작께서 어느 쪽인지는 필자도 아직 판단을 유보하고 있습니다만, 한 가지만은 확실합니다. 하이드 파크의 산책로는 넓고, 눈은 그보다 훨씬 많습니다. 백작께서 누구의 걸음에 보폭을 맞추셨는지 필자가 세어 두었다는 사실만 기억해 두시기 바랍니다.
필자는 언제나 여러분의 창밖에 있습니다.
Lady Whistled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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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dy Whistledown’s
SOCIETY PAPERS
Tuesday, May 3, 1814
EXTRAORDINARY PEOPLE. EXTRAORDINARY NEWS.
친애하는 독자 여러분. 오월의 런던은 장미보다 소문이 먼저 피어나는 계절입니다. 지난 소식지에서 필자가 예언한 바가 어찌 되었는지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많으실 텐데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필자의 눈은 여전히 밝고 여러분의 지갑은 여전히 가벼워지셨겠지요. 도박장에 걸린 판돈의 향방을 필자가 어찌 책임지겠습니까.
먼저 두 분의 첫 만남에 관하여 밝혀진 사실을 전해 드리겠습니다. 그것은 무도회장도, 응접실도 아니었다는군요. 작년 봄, 지 백작께서 후원하시던 소규모 실내악 연주회에서 현이 끊어지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연주자는 다름 아닌 연서이 양이었고, 객석의 절반이 자리를 뜨려던 그때 백작께서 직접 무대 뒤로 걸어 들어가 새 현을 구해 오셨다지요. 백작 작위를 지닌 사내가 악기상의 문을 두드리며 뛰어다녔다는 이야기는 그 자체로 희극입니다만, 필자가 진정 흥미롭게 여기는 대목은 따로 있습니다. 그날 이후 백작께서는 그 어떤 무도회에서도 첫 춤을 추지 않으셨다는 사실이지요. 일 년이 넘도록 말입니다.
오월 첫 주, 세인트제임스의 어느 저택에서 열린 만찬은 그야말로 화약고였습니다. 좌석 배치를 맡은 안주인께서 백작과 연 양을 식탁 양 끝에 앉히는 참으로 대담한 결정을 내리셨거든요. 결과가 어찌 되었느냐고요? 백작께서는 수프가 나오기도 전에 자리를 옮기셨습니다. 옆자리의 후작 영애께 정중히 양해를 구하시고는요. 그 영애께서 지으신 표정을 필자는 언어로 옮길 자신이 없습니다. 그날 밤 그 댁 하인들 사이에서 오간 이야기에 따르면, 백작께서는 후식이 나올 때까지 연 양의 접시에서 뼈를 발라내 주셨다고 합니다. 백작 각하께서 말입니다. 필자는 이 광경을 두고 사교계 예법의 붕괴라 부를지, 아니면 그저 사랑이라 부를지 아직 결정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오월이 두 분께 마냥 다정했던 것은 아닙니다. 열하루째 되던 날, 익명의 편지 한 통이 여러 저택의 아침 식탁에 동시에 도착했습니다. 내용인즉슨 연 남작가의 채무 규모와, 연 양이 지난 겨울 개인 교습으로 삯을 받았다는 폭로였지요. 귀족 영애가 돈을 받고 악기를 가르쳤다는 것. 오, 얼마나 끔찍한 죄악입니까. 굶어 죽는 편이 더 우아했을 텐데요. 사흘간 연 양께 도착한 초대장은 단 한 장도 없었고, 하이드 파크에서 그분과 눈을 마주치는 부인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오월 열나흘, 백작께서 하신 일을 필자는 기록해 두어야겠습니다. 그분은 여왕 폐하의 오찬에 초대받은 자리에서, 폐하께서 친히 물으신 혼사 이야기에 이렇게 답하셨습니다. 소인이 흠모하는 분은 겨울에 손이 트도록 활을 잡으신 분입니다. 그 손을 부끄러워하라 하시면 소인은 이 작위를 반납하겠습니다. 오찬장의 은식기가 일제히 멎었다지요. 폐하께서는 한참을 침묵하시다가 부채를 접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그 아가씨의 연주를 궁에서 듣고 싶군. 독자 여러분,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시겠습니까. 사흘 뒤 연 양의 저택 앞은 초대장을 든 하인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었습니다. 인간이란 참으로 일관되게 저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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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dy Whistledown’s Society Papers · Tuesday, May 3, 1814
물론 백작께서도 무사히 지나가시지는 않으셨습니다. 오월 스무이틀, 화이츠 클럽에서 어느 자작 영식이 연 양에 관하여 입에 담아서는 안 될 농담을 하셨고, 그 결과 그 청년은 이틀간 얼굴에 얼음을 대고 계셔야 했습니다. 백작께서는 결투 신청도 하지 않으셨더군요. 그저 주먹 한 번이었답니다. 신사답지 못하다고요? 그렇지요. 다만 그 자리에 계셨던 어느 노신사께서 이렇게 평하셨다 합니다. 저 사내는 귀족으로 태어나지 않았고, 그래서 지킬 줄 안다. 필자는 이 문장을 오래 곱씹었습니다.
오월의 마지막 주, 두 분은 어느 온실 정원에서 단둘이 계신 모습이 목격되었습니다. 보호자도, 하녀도 없이 말이지요. 백작께서는 무릎을 꿇지 않으셨고, 연 양께서는 울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두 분은 아주 오래 마주 서 계셨고, 백작의 손이 연 양의 왼손 약지 위에 머물렀다는 증언이 있습니다. 반지는 이미 그 자리에 있었다지요. 언제부터였을까요. 필자는 짐작하는 바가 있으나, 오늘은 여기까지만 적겠습니다. 소식지란 아껴 써야 오래가는 법이니까요.
온실이란 참으로 묘한 장소입니다. 유리로 지어졌으니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데도, 사람들은 어찌하여 그곳에서 비밀을 나눌 수 있다고 믿는 것일까요. 필자는 오월 내내 그 질문을 품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오늘에서야 답을 얻었습니다. 감출 생각이 애초에 없었던 것이지요. 왼손 약지 위에 얹힌 손이란 사교계에서 가장 시끄러운 침묵입니다. 그 침묵을 필자가 대신 소리 내어 드렸으니, 두 분께서는 필자를 원망하시기보다 유리로 지은 그 방을 원망하시는 편이 옳겠습니다.
어머니들께서는 딸들의 오월 드레스 값을 아끼셔도 좋겠습니다. 온실의 문이 안에서 잠긴 지는 이미 오래되었으니까요.
Lady Whistled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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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dy Whistledown’s
SOCIETY PAPERS
Thursday, June 2, 1814
EXTRAORDINARY PEOPLE. EXTRAORDINARY NEWS.
친애하는 독자 여러분. 유월의 런던은 언제나 잔인합니다. 사교철의 절정이자 종막을 향해 달려가는 이 계절에는 약혼과 파혼이 같은 주에 발표되고, 어제의 다이아몬드가 오늘의 웃음거리가 되지요. 필자는 유월을 사랑합니다. 잉크가 마를 새가 없거든요.
유월의 문이 열리자마자 런던에 도착한 마차 한 대가 있었습니다. 문장(紋章)이라고는 벗겨진 칠 자국뿐인 낡은 사륜마차였고, 거기서 내린 사내는 다름 아닌 선대 지 백작의 아우, 그러니까 현 백작의 숙부 되시는 분이었습니다. 십 년 전 채무를 남기고 대륙으로 도주하셨던 그분이 어찌하여 조카가 대리석 저택을 세운 바로 그 시점에 돌아오셨는지, 필자는 굳이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여러분께서도 셈은 하실 줄 아시겠지요. 그 사내는 사흘 만에 화이츠 클럽의 카드 테이블에 앉아 조카의 이름으로 외상을 긋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유월 아흐레, 필자가 이 소식지를 발행한 이래 가장 추악한 문서가 런던을 돌았습니다. 지 백작가의 지난 오 년치 장부 사본이었지요. 무역 항로의 은밀한 계약서, 선대의 빚을 덮기 위해 백작께서 어떤 자들과 손을 잡으셨는지, 그리고 열일곱의 소년이 부친의 관을 묻던 날 저당 잡힌 것이 무엇이었는지까지. 사본을 뿌린 손이 누구인지는 온 런던이 알고 있으나, 아무도 입 밖에 내지 않았습니다. 피붙이의 배신만큼 응접실을 즐겁게 하는 안주는 없으니까요.
그날 밤 백작께서는 어느 무도회에도 나타나지 않으셨습니다. 열흘 동안이나요. 그분의 저택 창문에는 밤새 불이 켜져 있었고, 하인들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으며, 연 양의 편지는 매번 되돌아왔다고 합니다. 독자 여러분, 필자는 여기서 한 가지를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사내들은 자신이 초라해졌다고 느낄 때 사랑하는 이를 가장 먼저 밀어냅니다. 그것을 배려라 부르지요. 필자는 그것을 겁이라 부릅니다만, 뭐, 명명이야 각자의 자유가 아니겠습니까.
유월 열사흘, 연 양께서 하신 일을 필자는 존경을 담아 기록합니다. 그분은 마차도 하녀도 없이 걸어서 지 백작가의 문 앞에 서셨고, 문지기가 세 번을 돌려보냈음에도 세 번을 다시 오셨습니다. 네 번째에는 아예 계단에 앉으셨다지요. 비가 오는 날이었습니다. 두 시간 뒤 백작께서 문을 열고 나오셔서 하신 말씀이 무엇이었는지, 그 자리에 있던 마부의 증언을 그대로 옮기겠습니다. 내 밑바닥까지 다 봤을 텐데 왜 왔어. 그리고 연 양의 대답은 이러했습니다. 바닥이 있으면 딛고 서면 되잖아요. 필자는 이 두 문장을 옮겨 적으며 잠시 펜을 놓아야 했습니다. 잉크가 번졌거든요. 습기 탓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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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dy Whistledown’s Society Papers · Thursday, June 2, 1814
유월 열여드레, 사태는 폭발했습니다. 숙부 되시는 분이 어느 살롱에서 술에 취해 연 양의 이름을 입에 올리셨습니다. 몰락한 남작가의 여식이 백작가의 재산을 노리고 조카를 홀렸다는 취지였고, 표현은 그보다 훨씬 저열했습니다. 그 자리에 백작께서 계셨습니다. 독자 여러분, 필자는 폭력을 옹호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날 백작께서 숙부의 멱살을 쥐고 벽으로 밀어붙이시며 하신 말씀은 기록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합니다. 당신들이 나한테 물려준 게 빚이랑 흉터밖에 없어서, 나는 저 사람한테 줄 게 그거 말곤 다 새로 만들어야 했어. 그 입으로 저 사람 이름 다시 부르면 내가 이 작위 버리고 당신 죽이러 갈 거야. 그러곤 오른손을 펴 보이셨다지요. 손바닥을 가로지르는 오래된 흉터를요. 그 자리에 있던 스물세 명이 일제히 시선을 돌렸다고 합니다.
결투 신청이 오갔고, 유월 스무하루 새벽 안개 속에서 두 분이 마주 서셨습니다. 그리고 백작께서는 총을 하늘로 쏘셨습니다. 참으로 김이 빠지는 결말이라 여기실 분들께 필자가 덧붙이자면, 백작께서 총구를 내리시며 하신 말씀은 이러했습니다. 난 당신처럼 안 될 거라고 했으니까. 숙부께서는 그 주에 채권자들에게 끌려가셨고, 백작께서는 단 한 푼도 대신 갚지 않으셨습니다.
유월의 마지막 밤, 궁정 음악회가 열렸습니다. 여왕 폐하께서 오월에 하신 약속을 잊지 않으셨더군요. 연 양께서 무대에 오르셨고, 활을 드시기 전 객석의 한 자리를 오래 바라보셨습니다. 그 자리에 누가 앉아 있었는지는, 필자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독자 여러분께서 짐작하실 것입니다.
연주가 시작되자 음악회장은 숨소리조차 사라졌습니다. 필자는 여러 차례 궁정의 연주를 들어 보았고, 대개는 하품을 참으며 옆자리 부인의 머리 장식을 세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다는 사실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그날 밤 연 양의 활이 첫 음을 그었을 때, 필자는 부채를 접었습니다. 그것은 기교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겨울에 손이 트도록 활을 잡았다는 그 손이, 유월의 비를 맞으며 남의 집 계단에 앉아 있었던 그 손이 무엇을 견뎌 왔는지가 소리 속에 전부 들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재능은 배울 수 있으나 견딤은 배울 수 없지요.
연주가 끝나고 삼십 초가량 아무도 손뼉을 치지 않았습니다. 무례해서가 아니라, 다들 자세를 고쳐 앉느라 그러했습니다. 가장 먼저 일어나신 분은 여왕 폐하셨습니다. 폐하께서 기립하시자 음악회장 전체가 파도처럼 따라 일어섰고, 그 소란 속에서 단 한 사람만이 처음부터 서 있었다는 사실을 필자는 놓치지 않았습니다. 지 백작께서는 활이 마지막 현을 떠나기도 전에 이미 자리에서 일어나 계셨더군요. 예법에 어긋나는 행동입니다. 그러나 그날 밤 그것을 지적할 만큼 어리석은 사람은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폐하께서는 연 양을 어전으로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하신 말씀이 이러했습니다. 그대의 가문이 무엇을 잃었는지는 짐이 알 바 아니다. 짐이 아는 것은 오늘 밤 이 궁에서 가장 값진 것을 그대가 가져왔다는 사실뿐이야. 그러곤 폐하께서는 손수 쥐고 계시던 부채를 연 양께 내리셨습니다. 독자 여러분, 폐하의 부채가 어떤 의미인지 모르시는 분은 이 소식지를 읽으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것은 왕실의 비호를 뜻하며, 다시 말해 앞으로 그 누구도 연 양의 이름에 흠집을 낼 수 없다는 선언입니다. 십일 전 그분의 이름을 입에 담았던 자들이 어디에 있는지 궁금해하실 분들께 알려 드리자면, 그들은 그날 밤 벽 쪽에 붙어 서서 아주 열심히 손뼉을 치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성실한 분들이지요.
그러나 필자가 진정 전하고 싶은 소식은 그 이후입니다. 음악회가 파하고 손님들이 마차를 기다리는 동안, 두 분은 궁정 정원으로 사라지셨습니다. 보호자도 없이 말이지요. 필자는 이 대목에서 도덕적 우려를 표해야 마땅하나, 유월 한 달간 저 두 사람이 겪은 일을 헤아려 보면 정원의 한 시간쯤은 눈감아 드릴 용의가 있습니다. 필자도 인간이니까요, 가끔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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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dy Whistledown’s Society Papers · Thursday, June 2, 1814
장미 덩굴 아래에서 백작께서 하신 말씀을 필자는 어떤 경로로 입수했는지 밝히지 않겠습니다. 다만 옮기기는 하겠습니다. 나는 평생 뺏기는 것만 배우고 살았는데, 이번 달에 처음으로 지키는 걸 해 봤어. 근데 그거 하려니까 사람이 아주 지독해지더라. 무섭지 않았어? 연 양께서는 이렇게 답하셨다고 합니다. 무섭지 않았어요. 계단에서 두 시간 기다리는 것보다 무서운 건 없었으니까. 그 말에 백작께서 웃으셨는지 우셨는지는 증언이 엇갈립니다. 아마 둘 다였겠지요.
그리고 백작께서는 연 양의 왼손을 드시고 약지의 반지를 잠시 빼셨다가, 안쪽을 보여 주신 뒤 다시 끼워 드렸다 합니다. 반지 안에 무엇이 새겨져 있었는지 필자는 아직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두 사람의 이니셜과 어느 날짜라는 소문만이 돌 뿐이지요. 오월의 소식지에서 필자가 언제부터였을까요라고 물었던 것을 기억하시는지요. 이제 답을 드리겠습니다. 그 반지는 사교철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그 손가락 위에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런던 전체가 지 백작을 두고 판돈을 걸고 다투는 동안, 백작께서는 이미 오래전에 셈을 끝내 놓으셨던 것입니다. 여러분의 도박은 처음부터 무의미했습니다. 필자는 이 사실이 대단히 유쾌합니다.
필자는 지난 십 년간 이 도시의 몰락을 수없이 기록해 왔습니다. 빚에 무너진 가문, 결투장에서 끝난 이름, 하룻밤 사이 텅 비어 버린 저택들. 그리하여 유월 초, 필자는 또 하나의 부고를 쓸 준비를 하고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필자의 펜은 이번에 헛발을 짚었습니다. 총구를 하늘로 들어 올리는 데에는 방아쇠를 당기는 것보다 훨씬 큰 용기가 필요하며, 문전박대당한 계단 앞에 밤새 서 있는 데에는 무도회장을 통째로 사들이는 것보다 많은 돈이 듭니다. 그 값을 치른 두 분께 필자는 오늘만큼은 조롱을 아끼겠습니다.
그리고 여왕 폐하의 부채에 관하여 한마디 덧붙이자면, 그것은 하사받는 물건이 아니라 빼앗아 오는 물건입니다. 연 양께서는 활 하나로 그것을 빼앗아 오셨지요.
유월의 승자가 누구인지 궁금해하시는 분들께 필자는 이렇게 답하겠습니다. 무대 위에 서 있던 쪽입니다.
Lady Whistled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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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dy Whistledown’s
SOCIETY PAPERS
Monday, July 4, 1814
EXTRAORDINARY PEOPLE. EXTRAORDINARY NEWS.
친애하는 독자 여러분. 칠월의 런던은 떠나는 계절입니다. 마차들은 시골 영지로 향하고, 응접실의 덮개천이 다시 씌워지며, 올 사교철에 짝을 찾지 못한 영애들의 어머니들께서는 내년을 기약하며 한숨을 쉬시지요. 필자에게 칠월은 결산의 달입니다. 그리고 올해의 결산은, 감히 말씀드리건대 필자가 펜을 든 이래 가장 만족스럽습니다.
칠월 초하루, 지 백작가의 대문에 인부들이 드나들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또 무슨 채권자 소동인가 하여 이웃들이 창가에 몰려들었으나, 실려 나온 것은 가구가 아니라 그림이었습니다. 선대 백작 부부의 초상화 두 점이 마차에 실려 어딘가로 옮겨졌지요. 백작께서 그것을 태우지 않으시고 영지의 창고로 보내셨다는 사실을 필자는 특별히 기록해 둡니다. 미워하는 것과 지워 버리는 것은 다릅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새 그림이 걸렸습니다. 화가는 연 양께서 활을 들고 계신 뒷모습을 그렸다고 하는데, 얼굴이 보이지 않는 초상을 주문하신 이유를 묻는 이에게 백작께서는 이렇게 답하셨답니다. 얼굴은 매일 볼 거니까 그림까지 필요 없고, 저 사람 연주하는 뒷모습은 객석에서밖에 못 보잖아.
칠월 여드레, 지 백작께서 상원에 출석하셨습니다. 그분이 의석에 앉으신 것은 작위를 물려받으신 이래 세 번째 일입니다. 그날 발의된 것은 부모의 채무를 이유로 미성년 상속인의 재산을 압류하는 관행을 제한하자는 안건이었고, 발의자는 다름 아닌 백작 본인이셨습니다. 연설은 길지 않았습니다. 이렇게만 말씀하셨다지요. 열일곱에 관 앞에 서 본 사람이 이 방에 몇이나 됩니까. 그날 나한테 서류를 들이민 사람들은 내가 글을 읽을 줄 아는지도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읽을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지금 여기 서 있습니다. 못 읽는 아이들은 지금 어디에 있겠습니까. 노 공작 한 분이 회의 도중 손수건을 꺼내셨다는 목격담이 있습니다만, 그분은 화분 때문이라 주장하고 계십니다.
칠월 열이틀, 연 남작가의 저택 지붕이 새로 얹혔습니다. 십 년 만의 일이라 합니다. 남작께서는 사위 될 사람의 돈을 받을 수 없다며 사흘을 버티셨고, 백작께서는 나흘째 되는 날 아예 인부들을 데리고 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셨답니다. 아버님, 이거 제가 갚는 거예요. 저 사람 이십 년 키워 주신 값 치고는 지붕 하나가 너무 싼데요. 그날 저녁 두 분이 함께 술을 드셨고, 백작께서 취해 사위 노릇을 잘하겠다며 세 번쯤 우셨다는 이야기는 하인들 사이에서만 도는 소문이니 여러분께서는 못 들으신 것으로 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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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dy Whistledown’s Society Papers · Monday, July 4, 1814
칠월 열아흐레, 마침내 그 소식이 발표되었습니다. 지 백작과 연 양의 혼약이 공식화되었으며, 예식은 올해가 아니라 내년 봄으로 정해졌습니다. 온 런던이 어리둥절해했지요. 그토록 서두르시던 분이 어찌하여 아홉 달을 기다리시느냐고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연 양께서 왕립 음악원의 마지막 과정을 마치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백작께서는 이 결정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저 사람 이름 앞에 내 성 붙이는 건 평생 할 수 있는데, 저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무대 올라가는 건 지금 아니면 못 해요. 순서는 그쪽이 먼저죠. 독자 여러분, 필자가 십 년간 이 소식지를 발행하며 사내들에게서 들어 본 말 중 가장 값진 문장입니다. 필자는 이 문장을 액자에 넣어 응접실에 걸어 두고 싶습니다만, 그러면 정체가 탄로 나겠지요.
칠월 스무엿새, 사교철의 마지막 무도회가 열렸습니다. 두 분은 첫 곡부터 마지막 곡까지 한 번도 자리에 앉지 않으셨습니다. 예법에 따르면 한 쌍이 세 곡 이상 함께 추는 것은 무례입니다. 두 분은 아홉 곡을 추셨습니다. 아무도 말리지 않았습니다. 폐하께서 부채로 박자를 맞추고 계셨거든요. 그리고 무도회가 끝나 갈 무렵, 백작께서 악단을 세우시고 직접 피아노포르테 앞에 앉으셨습니다. 백작께서 음악을 하신다는 사실은 아는 이가 드물었지요. 그분이 연주하신 것은 어느 악보에도 없는 곡이었고, 제목을 묻는 이에게 그저 저 사람 이름이라고만 답하셨습니다.
이제 필자는 올해의 결산을 마치겠습니다. 사월에 필자는 이 사내가 사교계를 통째로 사들일 셈이냐고 비꼬았습니다. 오월에는 그가 누구를 바라보는지 물었습니다. 유월에는 언제부터였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칠월인 지금, 필자는 더 이상 물을 것이 없습니다. 질문이 남아 있지 않은 사랑을 구경하는 일은 소식지 발행인에게 그리 달가운 일이 아닙니다만, 올해만큼은 예외로 두겠습니다. 필자도 사람인지라, 가끔은 팔 것이 없어도 기분이 좋은 날이 있는 법이지요.
무도회가 끝난 것은 새벽 두 시였습니다. 손님들이 하나둘 빠져나가는 동안 백작께서는 여전히 피아노포르테 앞에 앉아 계셨고, 연 양께서는 그 옆에 서서 악보도 없는 건반 위를 들여다보고 계셨습니다. 필자가 마지막으로 목격한 장면은 백작께서 연주를 멈추시고 고개를 드셨을 때였습니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거 아직 미완성이야. 뒷부분은 네가 졸업하고 나서 같이 쓰자. 나 혼자 쓰면 어차피 절반밖에 안 되는 곡이라. 독자 여러분, 필자는 여태껏 청혼보다 더 무거운 약속을 들어 본 적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오늘 그 생각을 고쳐먹었습니다.
이제 필자는 올해 사교철의 최종 결산을 발표하겠습니다. 사월 첫 소식지에서 필자가 지 백작을 두고 돈으로 사교계를 사들일 셈이라 적었던 것을 기억하시는지요. 필자는 그 문장을 철회합니다. 그분이 올 사교철에 사들이신 것은 무도회 초대장도, 명예도, 소문도 아니었습니다. 그분은 자신을 열일곱에 버려 놓은 세계 안에서 단 한 사람을 지켜 내는 방법을 사들이셨고, 그 값으로 재산이 아니라 자존심을 치르셨습니다. 남작가의 계단 앞에서 문전박대당하고도 돌아서지 않았던 밤, 결투장에서 총구를 하늘로 들어 올렸던 아침, 상원에서 자기 열일곱을 만인 앞에 벗겨 보였던 오후. 그것들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연 양에 대해서도 한 줄 남기겠습니다. 올 사교철에 가장 많이 언급된 이름은 백작이었으나, 가장 크게 달라진 이름은 연 양이었습니다. 그분은 지참금도 후원자도 없이 이 계절에 들어오셨고, 사교계가 던진 모든 돌을 정면으로 맞으셨으며, 그것을 활 한 자루로 되갚으셨습니다. 폐하의 부채를 받으신 영애는 근 이십 년 사이 세 분뿐입니다. 그리고 그 셋 중 아무 배경 없이 오직 실력만으로 받아 낸 분은 연 양이 처음입니다. 내년 봄 그분이 지 백작 부인이 되신다 한들, 런던은 여전히 그분을 연주자로 먼저 기억할 것입니다. 백작께서 바라신 것이 정확히 그것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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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dy Whistledown’s Society Papers · Monday, July 4, 1814
앞으로의 일정을 궁금해하실 분들을 위해 필자가 아는 바를 적어 두겠습니다. 두 분은 팔월부터 백작의 영지에서 지내실 예정이며, 연 양께서는 그곳에서 왕립 음악원의 마지막 과제를 준비하십니다. 백작께서는 영지 소작인들의 밀린 지대를 전부 탕감하셨고, 그 대신 겨울 동안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칠 교실을 하나 지으라 이르셨다 합니다. 상원 안건은 가을 회기에 다시 상정될 예정이며, 반대표를 던지실 분들께 필자가 미리 귀띔해 드리자면, 그 표는 아주 오랫동안 이 소식지에 기록될 것입니다. 필자는 기억력이 좋은 편입니다.
그리고 예식은 내년 사월 스무이레, 지 백작가 영지의 오래된 예배당에서 조촐하게 치러진다 합니다. 하객은 오십 명을 넘지 않을 것이며 초대장은 이미 발송되었습니다. 필자가 초대받았는지 여부는 밝히지 않겠습니다. 다만 내년 봄 소식지의 묘사가 지나치게 상세하다면 여러분께서 알아서 짐작하시기 바랍니다.
필자는 칠월의 첫 주를 통째로 상원 방청석 냄새를 맡으며 보냈습니다. 그곳은 사교계의 어느 무도회장보다 향수 냄새가 짙고, 어느 도박장보다 계산이 빠른 장소입니다. 그러니 그 안에서 한 사내가 자기 열일곱 해를 벗어 보이는 광경이 어떤 것이었는지, 필자는 여러분께 정확히 전달할 자신이 없습니다. 다만 이것만은 적어 두겠습니다. 그날 의사당 안에서 기침 소리 하나 나지 않았고, 안건이 부결된 뒤에도 아무도 서둘러 자리를 뜨지 않았습니다. 런던의 귀족들은 부끄러움을 아주 잘 참는 족속입니다만, 그날만큼은 참는 데에 제법 애를 쓴 모양이더군요.
어떤 분들께서는 백작께서 표를 세는 법도 모른 채 무모하게 일을 벌이셨다고 수군거리십니다. 필자의 견해는 다릅니다. 그분은 처음부터 표를 세러 가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분이 세러 가신 것은 훗날 이 안건을 다시 꺼낼 때 등을 돌리지 못할 사람의 수였고, 그 셈에서만큼은 백작께서 이기셨습니다. 진 쪽은 오늘 저녁 식탁에서 자기 아들의 얼굴을 똑바로 보지 못하실 겁니다.
아울러 남작가의 지붕 공사에 관하여 여쭙는 분들이 많으시기에 답해 드립니다. 그렇습니다, 값은 백작께서 치르셨습니다. 그리고 아니요, 그분은 그 사실을 단 한 번도 입 밖에 내신 적이 없습니다. 필자가 알아냈을 뿐이지요. 사교계의 사내들은 대개 자기가 베푼 것을 소문내고 자기가 부순 것을 감춥니다만, 이분은 정확히 그 반대로 사시더군요. 참으로 계산이 서투른 분입니다. 그리고 필자는 계산이 서투른 사내를 오래 지켜보는 취미가 있습니다.
끝으로 결혼 연기에 관하여 한마디만 보태겠습니다. 사교계는 미루어진 예식을 언제나 식은 마음의 증거로 읽습니다만, 이번만은 다르게 읽으시기 바랍니다. 신부가 될 이의 졸업장 한 장을 위해 자기 봄을 통째로 뒤로 물린 사내가 몇이나 되겠습니까. 필자는 세어 보았고, 답은 하나였습니다.
자, 이것으로 1814년 사교철이 막을 내립니다. 여러분의 딸들은 내년을 기약하시고, 여러분의 아들들은 부디 지 백작의 절반이라도 배우시기 바랍니다. 절반도 어려우시다면 사분의 일도 좋습니다. 필자는 눈이 높지 않은 편입니다.
그럼 다음 소식지까지, 여러분의 지붕은 무사하시기를.
Lady Whistled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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