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밤 아홉 시, 합정동 단골 고깃집 구석 테이블은 이미 소주병 다섯 개가 굴러다니는 난장판이었다. 지한울은 프로듀서 형들 사이에 끼어 앉아 삼겹살을 뒤집으며 막내답게 집게를 독점하고 있었다. 형 하나가 요즘 여친이랑 잘 지내냐고 묻자 그는 당연한 걸 왜 묻냐는 듯 코웃음을 쳤다. 씨발, 잘 지내다 못해 넘치지, 서이가 아침마다 머리 묶어 달라고 등 내미는 거 보면 그냥 하루가 다 끝난 기분인데. 그는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잘 익은 고기를 형들 접시에 하나씩 올려 주었다.
그때 가게 문이 덜컥 열리며 찬바람이 확 밀려 들어왔다. 고개를 돌린 지한울의 손에서 집게가 그대로 굳어 버렸는데, 문 앞에 연서이가 흰 원피스 위에 가디건을 대충 걸친 채 숨을 몰아쉬며 서 있었기 때문이다. 로우 포니테일을 묶은 검은 리본은 뛰어오느라 한쪽으로 삐뚤어져 있었고, 볼은 추위인지 다른 무엇 때문인지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뭐야, 왜 여기 있어, 집에 있는다고 했잖아. 지한울이 무슨 일이 생겼나 싶어 의자를 밀고 반쯤 일어나는 순간, 연서이가 성큼성큼 테이블 앞까지 걸어와 두 손을 탁 짚었다.
오빠, 나랑 결혼할 거야, 말 거야. 빨리 대답해.
테이블 위로 정적이 내려앉았고, 불판 위 삼겹살만 혼자 지글지글 소리를 냈다. 형들은 소주잔을 든 채 입을 벌리고 있었고, 지한울은 그 질문을 머릿속에서 세 번쯤 다시 재생하고 나서야 겨우 눈을 깜빡였다. 아니 잠깐만, 씨발, 이거 뭐야, 지금 나 프러포즈 받은 거야? 고깃집에서? 형들 앞에서? 반지를 몇 달째 고르면서 장소를 한강으로 할지 제주도로 할지 혼자 엑셀까지 만들어 놨는데 그게 지금 다 날아간 거냐고. 그런데도 이상하게 웃음이 비집고 올라와서, 그는 입술을 깨물며 그것을 꾹 눌러 참았다.
서이야, 일단 앉아. 숨부터 좀 쉬고.
연서이는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대답부터 하라고 다시 재촉했고, 눈가가 살짝 촉촉해져 있는 것이 형광등 아래에서 다 보였다. 옆자리 형이 낄낄거리며 한울아 빨리 대답해라, 신부가 기다린다, 하고 젓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드렸다. 지한울은 그 형의 정강이를 테이블 밑에서 한 번 걷어찬 뒤 연서이의 차가운 손을 붙잡아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손끝이 얼음장 같아서 그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고, 이 추운 날 가디건 하나 걸치고 뛰어왔다는 사실에 화가 나면서도 가슴 한쪽이 뜨겁게 저려 왔다. 그는 그녀의 두 손을 자기 손바닥 사이에 넣고 비비며 낮게 물었다.
갑자기 왜. 누가 뭐라 했어?
연서이가 입술을 삐죽 내밀더니, 오빠가 맨날 언젠가 결혼하자고만 하고 언제인지는 말을 안 해서 자기가 먼저 하기로 했다고 웅얼거렸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지한울은 결국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고, 두 손에 얼굴을 묻은 채 어깨를 들썩였다. 아아, 진짜 미치겠다, 내가 준비한다고 미루다가 이 사람을 이렇게 뛰어오게 만들었구나. 죽고 싶을 만큼 미안하고, 동시에 살고 싶을 만큼 좋아서 그는 한참 동안 얼굴을 들지 못했다. 이윽고 고개를 든 그의 잿빛 눈동자는 웃음기와 물기가 뒤섞여 반짝이고 있었다.
할 거야. 당연히 하지. 근데 반지는 서방님이 끼워 줄 거니까, 그건 양보 못 해.
연서이가 그제야 와락 그의 목에 매달렸고, 고깃집 안의 손님들까지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형들은 휴대폰을 꺼내 들고 이거 인스타에 올려도 되냐며 호들갑을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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