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추석 아침이었다. 한가위 햇살이 펜트하우스의 통유리창을 비스듬히 뚫고 들어와 거실 바닥에 길고 따스한 빛의 직사각형을 그려놓았다. 지한울은 평소보다 일찍 눈을 떴다. 옆에서 잠든 서이의 얼굴을 한참 바라보다가, 천장으로 시선을 옮겨 멍하니 생각했다. 추석. 지한울에게 명절이라는 단어는 언제나 어색하고 뾰족한 것이었다. 어릴 적 추석이라고 해봤자 깨진 유리잔과 소주병이 굴러다니는 부엌, 먼저 입을 여는 쪽이 지는 게임처럼 팽팽한 침묵만 감돌던 좁은 원룸이 전부였다. 송편은 텔레비전 속에서나 보는 음식이었고, 온 가족이 둘러앉아 반죽을 빚는 장면은 다른 나라 다큐멘터리처럼 멀게만 느껴졌다. 그런데 지금은 달랐다. 지한울의 옆에는 서이가, 그의 약혼자가 같은 이불 속에서 조용히 숨을 쉬고 있었다. 그 사실 하나가 추석이라는 날의 의미를 통째로 바꿔놓았다.

 

서이가 송편을 빚자고 한 건 사흘 전이었다. 장을 보러 간 마트 입구에 진열된 송편용 쌀가루와 솔잎 세트를 보고 서이의 눈이 반짝였다. 그 눈빛에 이미 진 지한울은 군말 없이 카트에 쌀가루와 녹두고물, 깨, 밤, 꿀, 솔잎 한 봉지를 차곡차곡 담았다. 서이가 거기에 서이가 콩고물까지 집어넣었고, 지한울은 그 옆에 놓인 초코칩 한 봉지를 슬쩍 카트에 밀어넣으며 이것도 넣자, 존나 맛있을 듯이라고 했다가 서이한테 그게 송편이냐는 눈빛을 받았지만, 결국 초코칩도 함께 계산대를 통과했다. 서이네 집은 매년 외할머니 댁에 온 가족이 모여 송편을 빚었다고 했다. 서이는 어릴 때부터 깨송편을 제일 좋아했는데, 검은깨를 설탕과 볶을 때 고소한 향이 올라오면 한 움큼씩 집어먹다가 외할머니한테 등짝을 맞곤 했단다. 그 얘기를 들으며 지한울은 웃었지만, 가슴 한쪽이 시큰했다.

 

주방 아일랜드 위에 재료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미리 반죽해 둔 쌀가루 덩어리가 젖은 면포 아래서 기다리고 있었고, 그 옆으로 서이가 전날 밤 볶아둔 깨소, 삶아 으깬 녹두, 잘게 다진 밤에 꿀을 섞은 밤소, 콩고물이 작은 볼에 하나씩 담겨 줄지어 있었다. 서이가 앞치마를 두르고 손을 비비며 지한울 옆에 섰다. 리본으로 묶은 로우 포니테일이 고개를 숙일 때마다 살랑거렸고, 오프숄더 니트 원피스 위로 베이지색 앞치마가 허리선을 따라 깔끔하게 매여 있었다. 지한울은 면포를 들춰 반죽을 손끝으로 꾹 눌러보았다. 손에 묵직하게 달라붙는 촉감이 생소했다. 래퍼 인생에서 요리라고 해봤자 라면에 계란 하나 깨 넣는 게 전부였으니까.

 

오빠, 이렇게 동그랗게 만들어서 가운데를 눌러. 그 안에 소를 넣고 반달 모양으로 접으면 돼.

 

서이가 시범을 보였다. 반죽을 동그랗게 굴린 뒤 엄지로 가운데를 눌러 오목하게 만들고, 깨소를 적당히 넣어 반달로 접었다. 솔기는 매끄러웠고 크기도 고른, 교과서에 나올 법한 반달이었다. 서이의 손끝에서 송편이 툭툭 만들어져 솔잎 깔린 찜기 위에 가지런히 놓였다. 팔짱을 끼고 지켜보던 지한울은 고개를 끄덕였다. 뭐야, 존나 쉬워 보이는데. 그렇게 생각하며 반죽 한 덩이를 떼어냈다.

 

그러나 현실은 지한울의 자신감을 처참하게 배신했다. 반죽을 굴리는 데까지는 그럭저럭 성공했지만, 가운데를 누르다 힘 조절을 못 해 바닥이 찢어졌다. 소를 넣으면 얇아진 틈으로 깨소가 삐져나왔고, 간신히 접으면 솔기가 벌어져 입을 쩍 벌린 조개 꼴이 되었다. 반달이라기엔 크루아상 같기도, 뭉개진 만두 같기도 한 정체불명의 무언가였다. 서이의 반듯한 송편들 옆에 놓으니 그 대비가 더 극명했다. 지한울은 그걸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뒤통수를 긁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야⋯⋯ 이거 왜 이렇게 생겼어. 존나 못생겼잖아.

 

지한울이 만든 반죽 덩어리를 본 서이가 풉,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웃음소리가 주방 타일에 부딪혀 통통 튀었다. 지한울은 그 소리가 싫지 않아서 일부러 더 억울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반죽 범벅인 손등으로 흘러내린 앞머리를 쓸어 넘기다가 이마에 반죽을 묻혔고, 서이가 또 한 번 웃었다. 지한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두 번째 반죽을 떼어냈다. 이번엔 진짜 제대로 만들어보겠다고 손끝에 집중하는데, 옆에서 서이가 세 개째 송편을 찜기에 올려놓는 소리가 들렸다. 속도 차이가 너무 심각해서 웃음도 안 나왔다.

 

야, 좀 천천히 해. 너 혼자 다 만들 기세야.

 

투덜대며 반죽 가운데를 조심스럽게 누르자, 이번에는 그럴듯한 오목함이 생겼다.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깨소를 퍼 넣었는데 욕심이 과했다. 소가 넘칠 만큼 들어가니 반달이 다물어질 리 없었고, 억지로 눌러 붙이다 옆구리가 터져 검은 깨소가 삐져나왔다. 지한울은 터진 곳을 반죽으로 덧대어 대충 봉합했다. 결과물은 혹이 하나 달린 기형적인 덩어리였다. 지한울은 그걸 손바닥에 올려 서이 쪽으로 내밀었다.

 

이거 봐라. 이건 좀 낫지 않냐? 아니야? 야, 솔직히 말해봐.

 

서이가 앞치마에 손을 닦고 그의 손바닥을 들여다보더니, 아주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했다. 그 침묵의 의미를 정확히 알아차린 지한울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서이는 웃음을 참으며 그 송편을 가져다 찜기 구석에 놓아주었다. 그 손길이 어찌나 다정한지, 못생긴 자식을 감싸는 엄마 같았다. 괜히 더 억울해진 지한울이 손끝에 쌀가루를 묻혀 서이의 볼에 톡 찍었다. 서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즉시 보복했고, 몇 초 만에 두 사람의 뺨과 앞치마에 하얀 가루가 점점이 묻었다. 지한울은 서이의 손목을 붙잡아 꼼짝 못 하게 해놓고, 콧등에 묻은 가루를 엄지로 문질러 닦아주었다. 그 순간 서이의 속눈썹이 가늘게 떨렸고, 지한울의 가슴 안쪽이 뭉근하게 데워졌다.

 

그때 서이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송편을 예쁘게 빚으면 예쁜 자식을 낳는다는 속설이 있다고. 어릴 때 외할머니가 그 얘기로 사촌 언니들을 놀리곤 했다고. 반죽을 굴리던 지한울의 손이 멈췄다. 시선이 천천히 찜기로 향했다. 서이가 만든 반듯하고 매끈한 반달들과, 그 옆의 정체불명 유기체들. 지한울의 미간에 주름이 깊게 잡혔다. 존나게 심각한 문제였다.

 

아니 씨, 이거 그럼 나 지금 큰일 난 거 아니야? 야, 이게 무슨 소리야. 내 새끼가 이렇게 생기면 어떡해. 얘 봐, 얘. 이거 얼굴이 어디야 대체.

 

지한울은 진심으로 당황한 얼굴이었다. 평소 미신 따위엔 코웃음 치는 인간이었지만 자식 얘기가 나오니 사정이 달랐다. 서이와 자기 사이에서 태어날 아이. 그 상상만으로도 손끝이 떨렸다. 눈매도, 웃는 모습도, 성격도 제발 서이를 닮았으면 했다. 자기 피가 섞인다는 게 가끔은 무서웠지만, 서이가 반은 만들어줄 테니 괜찮을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살았다. 그런데 송편 하나 때문에 미래의 자식 비주얼이 위태로워지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결국 남은 반죽은 전부 지한울의 손에서 쓰였다. 서이 몫까지 빼앗아 가며 지한울은 아일랜드 앞에 붙박이처럼 서 있었다. 손끝에 힘을 빼고, 반죽을 굴리고, 엄지로 가운데를 누른 다음, 소를 정확히 한 숟가락 반만 넣고, 솔기를 양쪽에서 조심스럽게 오므렸다. 열두 번째쯤 되어서야 반달이라 불러줄 만한 것이 나왔다. 지한울은 그걸 손바닥에 올려 한참 들여다보다가, 국보라도 발굴한 사람처럼 서이 앞에 들이밀었다. 서이가 박수까지 쳐 주자 입꼬리가 제멋대로 올라갔다. 그 뒤로 만든 것들은 확실히 나아졌다. 물론 초반의 흉물들은 찜기 구석에 따로 모여 저희끼리 옹기종기 붙어 있었지만.

 

찜기에 불을 올리자 주방에 솔향이 퍼지기 시작했다. 서이가 뚜껑을 열어 상태를 확인할 때마다 하얀 김이 훅 올라와 두 사람의 얼굴을 덮었고, 서이의 앞머리가 축축하게 가라앉았다. 지한울은 손가락으로 그 앞머리를 옆으로 넘겨주었다. 이십 분쯤 지나 꺼낸 송편은 반투명하게 익어 윤기가 흘렀고, 참기름을 슬쩍 바르자 표면이 반질반질 빛났다. 문제는 지한울의 기형 송편들이었다. 쪄놓고 나니 더 기괴해져 있었다. 옆구리 터진 놈은 깨소를 거의 다 토해내고 납작하게 주저앉았고, 혹 달린 놈은 혹이 더 부풀어 혹부리영감 꼴이 되었다.

 

야, 이거 봐. 이 새끼 쪄놓으니까 더 흉측해졌어. 아니 시발 왜 이래 진짜. 원래 이런 거야?

 

지한울이 젓가락으로 그 납작한 물건을 집어 눈높이까지 들어 올렸다. 뒤에서 서이가 배를 잡고 웃었고, 지한울은 억울한 척 입술을 삐죽이면서도 사실 이 상황 전체가 좋아서 미칠 것 같았다. 서이의 웃음소리가 주방을 가득 채우는 것. 명절 아침에 둘이서 쌀가루를 뒤집어쓰고 이런 병신 같은 짓을 하고 있다는 것. 어릴 때 텔레비전으로만 보던 장면 안에 자기가 들어와 있다는 것. 지한울은 그 흉측한 송편을 통째로 입에 넣었다. 뜨거워서 입을 반쯤 벌리고 하하 숨을 내쉬면서도 씹기를 멈추지 않았다. 얼마 남지 않은 깨소가 터지며 고소하고 달큰한 맛이 혀에 퍼졌다.

 

다음으로 집은 건 자기가 만든 것 중 제일 잘 빠진 반달, 열두 번째 만에 성공한 그놈이었다. 지한울은 후후 불어 식힌 송편을 서이의 입 앞으로 가져갔다. 서이가 순순히 입을 벌렸고, 볼이 볼록해지는 걸 지한울은 턱을 괸 채 바라보았다. 맛있냐는 물음에 서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야 어깨에서 힘이 빠졌다. 서이가 만든 반달도 하나 받아먹었는데, 안에서 초코칩이 나왔다. 마트에서 지한울이 슬쩍 밀어넣었던 그 초코칩. 서이가 몰래 하나 만들어둔 모양이었다. 녹은 초콜릿이 떡 사이로 흘러나오는 맛은 솔직히 좀 애매했지만, 지한울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걸 먹은 사람처럼 눈을 크게 떴다.

 

야, 이거 존나 맛있는데? 진짜야. 나중에 이걸로 브랜드 하나 차려야겠다. 초코송편. 어때, 대박 아니냐.

 

식탁에 앉아 송편을 나눠 먹는 동안에도 지한울은 그 속설을 붙들고 늘어졌다. 남은 것 중 제일 예쁜 놈을 따로 접시에 옮겨놓고는, 이건 우리 첫째라고 진지하게 선언했다. 그 옆의 좀 덜 예쁜 놈은 둘째. 혹 달린 흉물은 어쩔 거냐고 서이가 묻자, 지한울은 잠시 고민하더니 셋째라고 대답했다. 아무리 봐도 사람 형상은 아니었지만, 자기 손에서 나온 거라고 생각하니 정이 갔다. 셋째는 왜 혹이 달렸냐는 물음에는 이마가 좀 튀어나온 거라고, 머리가 좋을 상이라고 우겼다. 창밖으로 비스듬히 들어온 가을 햇빛이 식탁 위 접시들을 노랗게 물들였다.

 

야, 근데 생각해보니까 셋은 좀 많나? 아니 근데 벌써 첫째, 둘째, 셋째 다 정해놨는데 이제 와서 무를 수도 없잖아. 그치.

 

지한울은 송편을 하나 더 입에 넣으며 서이의 얼굴을 흘끗 보았다. 서이의 입가에 참기름이 반들거리고 있었다. 엄지로 닦아주려다가 마음을 바꿔, 식탁 위로 상체를 기울여 서이의 입술 끝에 짧게 입을 맞췄다. 고소한 참기름과 달큰한 떡 냄새가 혀끝에 남았다. 서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자 지한울은 시치미를 뚝 떼고 의자에 등을 붙이며 손등으로 입술을 쓸었다.

 

뭘 봐. 묻었길래 닦아준 거야.

 

설거지는 당연히 지한울 몫이었다. 도와주겠다고 일어서는 서이의 어깨를 붙잡아 도로 앉히고, 앞치마 끈을 고쳐 매며 싱크대 앞에 섰다. 반죽이 말라붙은 볼이며 찜기며 잔뜩 쌓여 있었지만 손이 하나도 무겁지 않았다. 물소리 사이로 서이가 거실에 틀어놓은 음악이 들려왔다. 지한울은 스펀지로 그릇을 문지르며 저도 모르게 흥얼거렸고, 머릿속으로는 벌써 가사 한 줄을 굴리고 있었다. 가루 묻은 손으로 미래를 빚었다는 식의, 좀 유치하지만 나쁘지 않은 문장이었다.

 

첫째, 둘째, 셋째는 랩을 씌워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구우면 겉이 바삭해진다고 서이가 알려준 대로, 내일 구워 먹을 생각이었다. 그릇을 다 엎어놓고 돌아보니 서이가 소파에 다리를 접은 채 몸을 파묻고 있었다. 지한울은 젖은 손을 바지에 슥 닦고 거실로 가 소파 팔걸이에 걸터앉았다가, 이내 서이의 무릎 옆으로 미끄러지듯 내려앉았다. 그러고는 그녀의 허벅지에 머리를 얹고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내년에도 하자, 이거. 내후년에도 하고. 그때쯤이면 나도 좀 잘 만들지 않겠냐.

 

머리카락 사이를 천천히 헤집는 서이의 손가락이 좋아서 지한울은 눈을 감았다. 집 안에는 아직 솔잎 냄새가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명절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따뜻한 말이었다는 걸, 스물네 살이 되어서야 알았다. 지한울은 서이의 손목을 붙잡아 손바닥에 입을 맞추고, 그 손을 제 뺨에 댄 채로 나른하게 웅얼거렸다.

 

사랑해. 진짜 존나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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